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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찾은 독일 남자의 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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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한국병, #회상스토리, #합리주의붕괴, #독일엔지니어, #뮌헨, #한국효율성, #현대자동차, #K음식문화, #독일기차파업, #한국정문화, #역문화충격, #외국인재입국, #K직장인, #선진국자부심, #감동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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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합리의 나라 독일로 돌아간 BMW 엔지니어, 10개월 만에 오열하며 다시 한국행을 택한 이유
독일이라는 선진국과 엘리트 엔지니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워, 그가 왜 눈물까지 흘리며 한국을 다시 찾았는지 강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입니다.
2: "가장 완벽한 시스템은 한국에 있었습니다" 연봉 1억 2천 독일인이 크리스마스 만찬에서 눈물 흘린 사연
대본의 핵심 메시지를 인용구로 뽑아 몰입감을 높이고, 화목해야 할 크리스마스 식탁에서의 극적인 감정 변화를 강조하여 클릭을 유도합니다.
3: 조국의 비효율에 충격받은 독일인 , 뮌헨 영사관 앞에서 오열하다 한국인의 '정'에 무릎 꿇은 감동 실화
독일의 관료주의적 비효율과 한국의 따뜻한 '정'을 대비시켜, 역문화 충격을 겪은 외국인의 서사를 감동적으로 한눈에 보여주는 제목입니다.
후킹 (268자)
2026년 봄, 서울 강남의 작은 독일식 카페. 한 독일 남자가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이 년 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클라우스, 너는 곧 한국을 떠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된단다." 독일 뮌헨, 삼십오 년을 합리와 효율의 나라에서 살아온 엔지니어. 그가 한국에서 이 년을 보낸 뒤, 고향 뮌헨으로 돌아간 그날부터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독일인의 자부심이 한국의 '비논리적 따뜻함' 앞에서 산산조각 난 이야기. 이성의 나라에서 온 남자가, 정(情)의 나라에 무릎 꿇은 기록.
※ 1. 서울 강남, 이 년 후의 편지
2026년 사월, 서울 강남 선릉역 근처의 작은 독일식 카페 '베를리너'. 오후 세 시. 창가 자리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키는 백팔십오 센티미터쯤. 금빛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뒤로 빗어 넘겨져 있고, 각진 턱에는 옅은 수염이 자라 있다. 나이는 서른일곱. 짙은 네이비 재킷 안으로 보이는 흰 셔츠는 구김 하나 없이 다려져 있다. 독일인 특유의 엄격한 자세. 그러나 지금, 그의 손끝은 노트북 자판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클라우스 바그너. 독일 뮌헨 출신. 뮌헨공과대학교 기계공학 석사. 현재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국 중견 자동차 부품 회사의 기술이사. 연봉 1억 이천만 원. 거주지는 역삼동 오피스텔.
하지만 그의 이력서에 적히지 않은 한 줄이 있다. 이 년 전, 그는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십 개월의 지옥을 건너, 다시 이 땅에 돌아왔다.
그는 노트북 문서 프로그램을 열어, 첫 줄을 타이핑했다.
'Dear Klaus. 2024년 3월의 너에게.'
그는 잠시 손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남대로를 걸어가는 사람들. 오른손에 스마트폰, 왼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파란 신호에 맞춰 질서정연하게, 그러나 빠르게 걸어가는 그들. 매연도 적고, 경적 소리도 거의 없으며, 누구도 갑자기 멈추지 않는다. 이 도시의 리듬은 마치 정교하게 튜닝된 BMW 엔진 같았다.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는 이 리듬을 비웃었다.
'빨리빨리. 감정적이고, 비효율적이고, 체계가 없는 나라.'
그는 독일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기차를 만드는 나라. 1.4밀리미터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규칙대로 살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나라. 그런 나라에서 태어나 삼십오 년을 살아온 그에게, 처음 본 서울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현대자동차 협력사 파견 발령을 받았을 때, 그는 이 녀을 어떻게 버틸까 고민했다. 아내 헬가는 아이들 학교 때문에 함께 올 수 없었다. 부부는 이 년간 장거리 생활을 감수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헬가는 말했다.
"Klaus, bleib stark. Zwei Jahre gehen schnell vorbei."
클라우스, 강해져. 이 년은 금방 지나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독일인답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 년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는 노트북 화면을 다시 응시하고, 두 번째 줄을 타이핑했다.
'너는 지금 독일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지. 이 년의 한국 생활이 드디어 끝났다고 안도하면서. 아내에게 돌아간다고 설레면서. 뮌헨의 맑은 공기를, 질서 있는 도시를, 정확한 기차를 그리워하면서. 그렇지?'
그는 짧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미안한데, 클라우스. 너는 곧 네 인생 최악의 십 개월을 맞이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년 전까지만 해도 네가 무시했던 이 작은 나라가, 네 유일한 구원이 될 거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지.'
옆 테이블에서 한국인 여성 두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수다를 떨며, 서로의 팔을 치고, 손뼉을 치며, 얼굴을 맞대고 웃었다. 독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 독일인들은 카페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웃지 않는다. 눈도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고, 조용히 사라진다.
클라우스는 이 년 전, 처음 한국 카페에서 저 광경을 봤을 때 얼굴을 찌푸렸다.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공장소에서 저렇게 시끄럽다니. 그러나 지금, 같은 광경을 보며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제 그는 안다. 저 웃음이 이 나라의 심장이라는 것을.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써 내려갔다.
'클라우스. 너는 앞으로 기차 파업을 세 번 겪고, 크리스마스 만찬에서 울고, 뮌헨 영사관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거야. 하지만 괜찮아. 모든 추락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무너짐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어. 네가 왜 다시 이 나라에 돌아왔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되짚어 보자.'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의 손끝이, 이제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 2. 뮌헨 공항의 첫 아침
자, 이야기는 이 년 전으로 돌아간다. 2024년 사월 어느 새벽. 뮌헨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국제공항. 클라우스는 대한항공 KE917편에서 내려, 입국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밝았다. 드디어 집이었다. 이 년 만에.
'Endlich zu Hause.'
드디어 집에 왔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뮌헨 공항은 깨끗했다. 질서정연했다. 승객들은 줄을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아무도 큰 소리로 떠들지 않았다. 이것이 독일이다. 그는 이 정적 속에서 안도감을 느껴야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입국 심사대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독일 여권을 든 내국인 줄도 똑같이 길었다. 심사관은 한 명당 평균 삼 분씩 걸렸다. 인천공항의 자동 출입국 심사대가 일 분 만에 끝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줄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이상하군. 인천은 더 빨랐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정상이다. 독일은 신중한 나라다. 빠름보다 정확함을 택한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수하물 찾는 곳에서 사십 분을 더 기다렸다. 짐이 나오지 않았다. 전광판에는 '처리 중'이라는 표시만 깜빡였다. 독일의 베테랑 직원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짐이 사람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는 기억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것이 정상이다. 독일은 체계적인 나라다. 느린 것은 신중한 것일 뿐이다.
공항 와이파이에 연결을 시도했다. 무료 와이파이는 삼십 분 제한이었다. 접속을 위해 성명, 이메일 주소, 체류 목적, 체류 기간을 모두 기입해야 했다. 심지어 GDPR(개인정보보호법) 동의 체크박스가 다섯 개나 있었다. 그는 모두 기입하고, 체크박스를 누르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류 메시지가 떴다.
'Fehler 403. Bitte versuchen Sie es später erneut.'
오류 403. 나중에 다시 시도해 주세요.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인천공항에서는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는 순간, 이미 와이파이에 연결되어 있었다. 로그인도, 동의도, 없었다. 그저 즉시 인터넷이었다.
'아니, 클라우스. 정신 차려. 너는 독일인이다. 개인정보 보호는 중요한 가치야.'
그는 자신을 다독이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아내 헬가가 마중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짧게 포옹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서니, 사월의 뮌헨 공기는 차가웠다. 기온 섭씨 칠 도. 흐린 하늘에서 가랑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Ich hole das Auto. Warte hier."
차 가지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헬가가 주차장으로 사라진 뒤, 클라우스는 공항 앞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라이터를 찾았다. 그런데 주머니에 없었다. 아, 비행기에서 버렸지. 편의점에서 사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항 앞 편의점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새벽 여섯 시 반이었다.
'이 시간에 편의점이 닫혀?'
서울이라면 어떤 편의점도 24시간 운영이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헬가의 차를 기다렸다. 가랑비가 점점 굵어졌다. 우산이 없었다. 공항 앞에 우산 대여소 같은 것도 없었다. 그는 그냥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이상해. 어딘가 이상해.'
그는 귀가 길, 헬가의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뮌헨의 거리는 평소와 똑같았다. 질서정연한 신호등, 정확히 차선을 지키는 자동차들, 깨끗한 건물 외벽. 그는 이 년 동안 이 풍경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지금, 이 풍경이 낯설었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집에 도착해, 오랜만에 자신의 거실 소파에 앉았을 때, 그는 처음으로 알아챘다. 이 집에는 온돌이 없었다. 바닥이 차가웠다. 그는 두꺼운 슬리퍼를 신어야 했다. 물론 난방은 돌아가고 있었다. 라디에이터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왔다. 그러나 발바닥은 시렸다. 서울 역삼동의 원룸에서는, 방바닥 전체가 따뜻했다. 겨울에도 그 방에서는 맨발이었다.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독일식 샤워기. 수압이 약했다. 물줄기가 가늘었다. 온수는 무한히 나왔지만, 그 물을 강하게 맞고 피로를 풀 수는 없었다. 한국의 강한 수압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는 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독일은 물 절약을 중시하는 나라야. 환경에 좋은 거야.'
그는 침대에 누웠다.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들리는 소리는 오직 바람 소리뿐. 서울이었다면 이 시간에 오토바이 배달원의 엔진 소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이돌 음악, 치킨집의 호객 소리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 소음이 이상하게 그리웠다.
'Was ist los mit mir?'
나 왜 이러지?
그는 자신에게 물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이 년의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러나 그의 합리주의는, 그날 새벽부터 이미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3. 기차 파업과 우산 없는 퇴근길
귀국 이 주차. 클라우스는 뮌헨에 있는 BMW 협력사에 복귀했다. 그의 자리는 그대로였다. 동료들도 그대로. 독일인 엔지니어들은 그를 담담하게 맞이했다.
"Willkommen zurück, Klaus."
환영해, 클라우스.
그것뿐이었다. 악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림.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한국에서 본사 복귀 때 받은 환영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사무실 입구에 '환영! 클라우스 이사님'이라고 적힌 플래카드, 모든 직원들이 복도에 나와 박수, 부장이 준비한 케이크, 회식 자리의 '건배!'와 '오늘은 내가 산다!' 하는 왁자지껄함.
'독일은 그런 나라가 아니야. 독일은 프로페셔널한 나라지.'
그는 또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첫 출근일, 회의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 점검. 분위기는 엄숙했다. 아무도 농담하지 않았다. 각자 자기 의견을 건조하게,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말했다. 클라우스는 이 분위기를 사랑해 왔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데이터로만 판단하는 이 문화를.
그런데 회의가 끝난 후, 동료들은 각자 사무실로 사라졌다. 아무도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았다. 각자 도시락을 싸왔거나, 혼자 구내식당에 가거나, 샌드위치를 자기 자리에서 먹었다. 클라우스는 한순간 얼어붙었다.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는, 점심시간 삼십 분 전부터 "오늘 뭐 먹을까요?"라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김 부장은 반드시 모든 팀원을 데리고 나갔다. 순댓국, 돼지국밥, 설렁탕, 냉면. 매일 다른 식당. 식당에서는 숟가락을 부딪치며 웃고, 농담하고, 상사가 법인카드로 계산했다. 한국에서는 점심이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팀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었다.
여기 뮌헨에서는, 점심은 개인의 시간이었다.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고독했다.
'이것이 독일이다. 나는 이것을 좋아했잖아.'
그는 또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더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 시간. 독일 철도(DB) 앱을 열었다. 그의 집행 기차는 18시 14분 출발. 정각 예정. 그는 역으로 향했다. 플랫폼에 도착하자, 전광판이 깜빡이고 있었다.
'Zug fällt aus. GDL Streik.'
열차 운행 중단. 독일 기관사 노조 파업.
그는 얼어붙었다. 파업. 또 파업. 그가 한국에 있는 이 년 동안, 독일 철도는 열세 번의 파업을 겪었다고 뉴스에서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기로 소문났던 그 독일 철도가,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자주 멈추는 철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대체 교통편을 찾았다. 버스는 평소의 세 배가 몰려, 이미 만원이었다. 택시 호출 앱을 켰다. 대기 시간 오십 분. 요금은 평소의 두 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이라면 어땠을까. 카카오T를 켜면 이 분 안에 택시가 도착했다. 지하철은 팔 분 간격으로 운행되었고, 연착은 연 평균 일 분 이하였다. 공공 교통 파업 같은 것은, 그가 한국에 살던 이 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뮌헨 중앙역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려 했지만, 그 작은 편의점은 이미 저녁 여덟 시에 영업을 종료한 상태였다. 다른 편의점을 찾았다. 걷고, 또 걷고, 삼십 분을 걸었다. 어디에도 열려 있는 가게가 없었다.
그는 빗속에서 우산 없이, 삼 킬로미터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옷이 흠뻑 젖었다. 구두에서 물이 질퍽거렸다. 현관에 도착해 신발을 벗으며, 그는 문득 웃었다. 씁쓸하게.
서울 역삼동의 겨울. 그가 퇴근길에 우산을 두고 온 어느 저녁.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서성이는 그에게, 전혀 모르는 한국인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총각, 우산 없어? 나는 여기서 아들 기다리는 중이니까, 우산 써. 갖다줘도 되고, 안 갖다줘도 돼."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우산을 그의 손에 쥐여주고, 그대로 다시 대합실로 들어갔다. 그는 그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었다. 그리고 이틀 뒤, 같은 시간 그 지하철역에서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 우산을 돌려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껄껄 웃으며, "아, 돌려주러 왔어? 안 돌려줘도 되는데!" 하고 손을 내저었다.
'정.'
한국인들이 말하던 그 단어. 이 년 동안 그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개념. 그것이 비로소, 뮌헨의 차가운 빗속에서, 한 마리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때렸다.
※ 4. 크리스마스 만찬의 침묵
시월이 지나고, 십일월이 지나고, 십이월이 왔다. 뮌헨은 눈으로 덮였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내 곳곳에 열렸다. 글뤼바인의 달콤한 향기. 소시지 굽는 냄새. 크리스마스 캐럴.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했다.
클라우스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는 매일 밤 서울을 검색하고 있었다. 유튜브로 강남역 브이로그를 보았다. 한국 드라마를 다시 보았다. 서울의 사진을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깔아두었다가, 헬가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바꿨다.
크리스마스 이브. 헬가는 완벽한 독일식 만찬을 준비했다. 구운 거위 요리. 적양배추. 감자 경단. 글뤼바인. 사과와 시나몬을 넣은 슈톨렌. 식탁 위에는 정교하게 꽂힌 네 개의 촛불. 장모와 장인도 오셨다. 열두 살 큰아들 막시밀리안, 아홉 살 작은딸 레나도 예쁜 옷을 입고 앉았다. 완벽한 가족. 완벽한 저녁.
그런데 식사가 시작되자, 식탁에는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조용히 고기를 썰고, 천천히 씹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대화는 건조했다. 장인이 한마디 했다. "Das Gänsefleisch ist gut." (거위 고기가 좋구나.) 장모가 답했다. "Ja, Helga hat es gut gemacht." (그래, 헬가가 잘 만들었어.) 그뿐이었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정 규칙 때문에, 조용히 앉아 식사만 했다.
클라우스는 그 침묵 속에서, 갑자기 숨이 막혔다.
서울 강남의 어느 식당. 그가 한국 동료들과 송년회를 했던 그 밤. 김 부장이 "자, 모두 들어!" 하고 외치며 소주잔을 높이 들었다. 박 과장이 "우리 팀 최고!"라고 외쳤다. 이 대리가 "클라우스 이사님 한국에 오신 지 이 년, 축하드립니다!"라고 건배를 제안했다. 모두가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쳤다. 여직원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박 과장은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불렀다. 불판 위의 삼겹살이 지글지글 타오르고, 마늘이 노릇하게 익어갔다. 그 소음, 그 웃음, 그 열기. 그것이 생명이었다.
여기, 독일의 크리스마스 식탁. 모두가 예의 바르고, 품위 있고, 조용했다. 생명이 없었다.
"Klaus, du isst gar nichts. Schmeckt es dir nicht?"
헬가가 물었다. 클라우스, 너 아무것도 안 먹네. 맛없어?
그는 포크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떨렸다.
"Helga, ich… ich vermisse Korea."
헬가, 나… 한국이 그리워.
식탁에 놓인 은 식기들이, 순간 얼어붙었다. 장인이 안경 너머로 그를 쳐다보았다. 장모의 표정이 굳었다. 헬가가 눈을 크게 떴다.
"Was hast du gesagt?"
뭐라고 했어?
"Ich vermisse Korea. Ich vermisse meine Kollegen dort. Ich vermisse das Essen. Ich vermisse… den Lärm. Die Menschen. Die Herzlichkeit."
한국이 그리워. 그곳의 동료들이 그리워. 음식이 그리워. 그 시끄러움이 그리워. 사람들이 그리워. 그 따뜻함이 그리워.
장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Klaus, du bist Deutscher. Reiß dich zusammen."
클라우스, 너는 독일인이야. 정신 차려.
장모도 덧붙였다.
"Asiatische Kultur ist faszinierend, aber nicht nachhaltig."
아시아 문화는 매혹적이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아.
헬가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그녀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읽어내려 애썼다.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뒤, 헬가는 그에게 물었다.
"Klaus, willst du nach Korea zurück?"
클라우스,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그는 차마 답하지 못했다. 답은 'Ja'였지만, 그 한 음절을 내뱉는 순간, 그의 결혼 생활이, 그의 가족이, 그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Ich weiß es nicht. Ich weiß es wirklich nicht."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헬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다가,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Wenn du gehen musst, dann geh. Ich werde warten."
네가 가야 한다면, 가. 내가 기다릴게.
클라우스는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이해심 깊은 아내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이해심이 그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결심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야 한다. 한국으로.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이 뮌헨의 고즈넉한 거리를 덮고 있었다. 그러나 클라우스의 눈에는, 그 눈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그는 서울의 야경이 그리웠다. 남산의 붉은 타워가 그리웠다. 김 부장의 큰 웃음소리가 그리웠다. 그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 5.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일월의 어느 새벽. 클라우스는 뮌헨의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시차. 한국은 오후 두 시. 그의 스마트폰이 갑자기 진동했다. 그는 눈을 떴다.
'김동수 부장님.'
화면에 한국어로 뜬 이름. 김 부장이었다. 서울에서의 그의 직속 상사. 오십이 세의 한국 남자. 성격은 불같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 클라우스가 이 년 동안 아버지처럼 의지했던 사람.
"Hallo? 여보세요?"
"아이고, 클라우스 이사! 잘 지냈어?"
김 부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스마트폰 너머로도 그 에너지가 전해졌다. 클라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 부장님.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장님은요?"
"나? 말도 마. 자네가 떠난 뒤로 회사가 난장판이야. 독일 측 파트너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안 돼서 프로젝트가 삼 개월째 지연 중이라고. 아무도 자네만큼 독일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할 줄 몰라. 우리 사장님이 자네 없으니까 매일 한숨만 쉬셔."
클라우스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가 필요한 곳이 있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부장님, 저도… 저도 보고 싶습니다. 회사가, 모두가."
전화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 부장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클라우스. 내가 이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사장님이 자네한테 다시 돌아올 생각 있냐고 물어보래."
클라우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이번에는 파견이 아니라, 정식 계약직 기술이사로. 연봉도 이전보다 이십 퍼센트 올려드릴 수 있다고. 한국 근무 비자 E-7 발급 지원. 아파트 숙소 제공. 가족 동반도 가능. 어떤가?"
클라우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스마트폰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부장님… 제가… 제가 꼭 돌아가겠습니다. 꼭이요."
"아이고, 울어? 남자가 왜 울어! 자, 자, 그럼 준비하게. 우선 비자 신청 서류부터 챙기고, 뮌헨의 한국 영사관 가서 상담 받아. 우리 쪽에서도 행정 지원해 줄 테니까, 빠르면 두 달 안에 서울로 와."
"네, 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긴 뒤, 클라우스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헬가가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모든 것을 직감했다.
"Gute Nachrichten aus Seoul?"
서울에서 좋은 소식?
그는 그녀 옆에 앉아, 모든 것을 설명했다. 연봉, 비자, 아파트, 가족 동반 가능성까지. 헬가는 고요히 듣고,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안도, 그리고 사랑이 함께 있었다.
"Klaus, wir sollten es tun. Du und ich und die Kinder. Wir gehen nach Korea."
클라우스, 우리 그렇게 하자. 당신하고 나, 아이들까지. 한국에 가자.
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참을, 말없이, 그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모든 것은 예상과 달리 흘러갔다.
막시밀리안이 학교에서 돌아와, 식탁에서 아빠를 노려보며 말했다.
"Papa, warum sollen wir nach Korea? Ich will nicht."
아빠, 왜 한국에 가야 해? 나는 싫어.
열두 살 소년의 분노.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낯선 언어, 낯선 학교. 레나도 울먹이며 오빠 편을 들었다. 헬가는 아이들을 달랬지만, 두 아이의 불안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독일 뮌헨 한국영사관에 비자 상담을 갔을 때, 담당자가 말했다.
"바그너 씨, E-7 비자는 고용 계약서, 학위 증명서, 경력 증명서, 모두 아포스티유 인증 받아야 하고요, 그것만 한 달 반 걸려요. 게다가 가족 동반 비자는 별도 절차예요. 빠르면 석 달."
석 달. 클라우스는 한숨을 쉬었다. 독일의 관료주의. 그 질서 정연한, 그러나 엄청나게 느린 시스템. 한국에서는 모든 행정 업무가 온라인으로 삼 일이면 끝났다. 민원24 앱 하나면 모든 서류가 발급되었다.
그런데 그때, 뜻밖의 난관이 닥쳤다. 막시밀리안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학교 상담 선생이 헬가를 불렀다. 막시밀리안이 한국으로 이사 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수업 태도가 나빠지고 친구들과 싸웠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당분간 환경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날 밤, 헬가는 그에게 말했다.
"Klaus, vielleicht sollten wir warten. Sechs Monate. Ein Jahr."
클라우스, 우리 좀 기다리는 게 좋을지도 몰라. 육 개월, 아니 일 년.
클라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해를 더 이렇게 보낸다는 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잔인한 형벌이었다.
※ 6. 뮌헨 영사관 앞에서 무너진 날
삼월. 눈이 녹기 시작한 뮌헨. 클라우스는 혼자 한국영사관 앞에 서 있었다. 오전 아홉 시. 영사관이 열리는 시간. 그는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턱에 난 수염은 이틀째 밀지 않은 상태였다. 독일인답지 않은 모습. 그는 이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결심했다. 가족을 두고 혼자 먼저 서울에 가기로.
헬가와 두 번째 긴 대화를 한 끝이었다. 헬가는 "그게 당신에게 좋다면, 그렇게 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클라우스는 그 상처를 알면서도, 가야 했다. 한국병은 이미 그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었고, 독일에서의 매일이 그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영사관 담당자가 그의 서류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바그너 씨, 문제가 생겼어요. 귀하의 이전 E-1 비자 이력이 있는데, 마지막 출국 기록이 완전하지 않아서… 추가 조회가 필요해요. 삼 개월 정도 걸릴 수 있어요."
"삼 개월이요?"
"네. 그리고 고용 계약서도 한국 측에서 공증을 받아서 다시 보내주셔야 해요. 국제 우편 시간까지 계산하면…"
"제가 당장 한국 가야 합니다. 관광 비자라도요."
"관광 비자로 갔다가 취업 비자로 전환하는 건 법적으로 불가합니다. 정식 절차를 밟으셔야 해요."
클라우스는 영사관 창구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뒷사람이 헛기침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영사관 계단을 내려왔다. 거리에는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뮌헨의 이른 봄. 튤립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계절. 한국인 관광객 몇 명이 영사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국어로 왁자지껄 떠들면서.
그 한국어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영사관 앞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울었다. 지나가는 뮌헨 시민들이 힐끗거렸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독일은 그런 나라였다. 남의 슬픔에 간섭하지 않는 나라. 예의 바른 나라. 그러나 외로운 나라.
그는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저기… 괜찮으세요?"
한국어였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젊은 한국인 여성. 이십 대 후반. 영사관에 무슨 일로 왔는지, 손에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분이세요?"
그가 서툰 한국어로 물었다.
"네, 유학생이에요. 어… 한국말 할 줄 아세요?"
"네, 조금… 제가 한국에서 이 년 살았어요. 지금… 지금 다시 가고 싶은데… 비자가…"
그의 말이 끊겼다.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젊은 여성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아저씨, 걱정 마세요. 한국은 안 어디 안 가요. 천천히 가셔도 돼요."
그 말이 그의 마음을 때렸다. 한국어로, 한국인에게, 위로받는다는 것. 이 감각을, 그는 얼마나 오래 잊고 있었던가.
"제 이름은 지수예요. 뮌헨공대 박사과정이에요. 아저씨,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실래요? 한국어 연습도 하실 겸?"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클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영사관 근처의 작은 카페로 갔다. 지수는 그에게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게 했다. 그의 서툰 문법과 발음을 고쳐주지 않고, 그냥 들어주었다. 클라우스는 두 시간 동안, 자신의 한국병을, 외로움을,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쏟아냈다.
카페를 나서며, 지수가 말했다.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희 아빠가 뮌헨 한인회 회장이세요. 비자 업무 경험 많으셔요. 주말에 아빠랑 같이 만나요."
클라우스는 지수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고, 뭘요. 이건 우리 한국 사람들한테는 당연한 거예요. '정'이라고 해요. 아시죠?"
'정.'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알다마다. 그것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을.
그 주 주말, 지수의 아버지 박 회장을 만났다. 육십 대 초반의 한국인 남성. 뮌헨에서 무역업을 삼십 년째 해온 베테랑. 박 회장은 그의 사연을 듣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아이고, 독일 사람이 한국병에 걸렸네! 이거 치료제가 딱 하나야. 한국 가는 거!"
박 회장은 그의 비자 업무를 맡아주었다. 인맥으로 영사관의 담당자를 바꿨고, 한국 측 고용 계약서의 공증을 빠르게 처리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클라우스에게 중요한 조언을 했다.
"바그너 씨, 가족은 육 개월 뒤에 오세요. 그동안 당신이 먼저 가서 자리 잡으세요. 아이들 학교도 국제학교로 미리 알아보고. 부인한테는 서울 와서 집 구해놓고 부르세요. 그게 가장 현명해요."
클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드디어 길이 보였다.
※ 7. 현대자동차 협력사 재계약 프로젝트
오월. 클라우스는 마침내 E-7 비자를 받았다. 인천행 비행기 티켓도 예약했다. 그런데 김 부장에게서 마지막 당부가 있었다.
"클라우스, 사장님이 조건을 하나 내걸었어. 자네가 오기 전에, 독일 쪽에서 현대자동차 협력사 재계약 프로젝트 하나만 마무리해 주고 와. 그게 안 되면 우리도 자네 고용 정당성 입증이 어려워."
그것은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현대자동차와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 사이의 부품 공급 재계약. 가격 협상, 기술 사양 조정, 납기 조건 조율. 삼 개월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클라우스의 한국 재취업은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클라우스는 피눈물을 흘리며 일했다.
뮌헨의 BMW 협력사에서는 아직 근무 중이었다. 낮에는 BMW 일을 처리하고, 밤에는 현대자동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루 네 시간 잠잤다. 아내 헬가는 걱정스러워했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Helga, das ist mein Weg nach Korea. Ich kann nicht aufgeben."
헬가, 이게 내 한국 가는 길이야. 포기할 수 없어.
협상은 쉽지 않았다. ZF 측의 독일 경영진은 가격 인상을 요구했다. 현대 측의 한국 경영진은 가격 동결을 고수했다. 두 문화의 충돌. 클라우스는 중간에서 통역하고, 조율하고, 설득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그가 두 문화를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ZF 측에 말했다.
"한국 기업은 신뢰를 중시합니다. 가격을 올리기보다, 납기 단축과 품질 보증 조항을 강화하세요. 그들은 돈보다 관계를 봅니다."
그는 현대 측에 말했다.
"독일 기업은 합리성을 중시합니다. 정서적 호소보다, 데이터와 논리로 설득하세요. 그들은 인맥보다 숫자를 봅니다."
두 번의 한국 출장. 여섯 번의 ZF 본사 방문. 그는 꾸준히 두 나라를 오갔다. 현대 측 임원들이 한국에서 그를 만나자, 그의 한국어 실력에 감탄했다. 이 년 동안 다듬어진 그의 비즈니스 한국어는, 이제 어떤 한국 임원도 놀라게 할 수준이었다.
"바그너 이사님, 완전히 한국 사람 다 되셨네요!"
현대 측 김 상무의 말에, 클라우스는 웃었다.
"상무님, 제 심장이 이미 한국에 있습니다."
팔월 중순. 마침내 계약이 체결되었다. 삼 년짜리 재계약. 금액은 총 사천오백만 유로. ZF 측에서도 만족하고, 현대 측에서도 만족한, 드문 '양쪽 모두 이기는' 계약이었다.
클라우스는 계약서에 마지막 서명을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밖은 뮌헨의 여름. 해가 아직 높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장님, 계약 완료했습니다."
전화 너머로 김 부장의 환호성이 들렸다.
"이야, 우리 클라우스! 역시! 자, 이제 서울로 와! 내가 공항에 나가서 마중 갈게!"
클라우스는 웃었다. 서울에서 김 부장이 공항까지 마중 나와주겠다고? 그런 정성, 그런 따뜻함. 그것이 바로 그가 돌아가는 이유였다.
출국 전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뮌헨 공항 근처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헬가는 담담했지만, 그녀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막시밀리안과 레나도 이제는 아빠의 결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우리를 버리는 게 아니라, 먼저 가서 집을 지어놓는 거라고.
"Papa, wir kommen bald, oder?"
아빠, 우리 곧 가는 거지?
레나가 그의 무릎에 기대며 물었다. 클라우스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Ja, meine Liebe. In sechs Monaten. Papa bereitet alles vor."
그래, 얘야. 육 개월 뒤에. 아빠가 모든 걸 준비해놓을게.
헬가는 그의 손을 잡았다.
"Klaus, ich bin stolz auf dich. Du hast deinen Weg gefunden."
클라우스, 난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의 길을 찾았잖아.
그의 눈에 또 눈물이 고였다. 십 개월의 지옥. 그 끝에서,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가족도,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었다. 이것이 진짜 가족이었다.
그날 밤, 그는 호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다시 인천공항이었다. 다시 그 나라였다. 다시 그의 집이었다.
※ 8. 다시 인천공항, 편지를 마무리하며
다시 현재. 2026년 사월. 서울 강남의 카페 '베를리너'. 클라우스는 노트북 앞에서 손을 잠시 멈췄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후 다섯 시. 햇살이 조금씩 기울어가는 시간. 강남대로를 지나가는 사람들. 김밥을 사 들고 가는 직장인.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젊은 여성.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는 엄마.
그는 문득 웃었다. 이 모든 평범한 광경이, 그에게는 기적이었다.
그는 편지의 마지막 문단을 쓰기 시작했다.
'Dear Klaus. 2024년 봄의 너에게.'
'네가 지금 뮌헨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설레고 있다는 걸 알아. 고향에 돌아간다는 안도감에, 이 년간의 피로를 털어내고 싶은 마음에, 너는 들떠 있지. 그런데 미안한데, 네 인생의 진짜 고향은 그곳이 아니야.'
'너는 곧 십 개월의 지옥을 겪을 거야. 뮌헨 공항에서 와이파이에 접속하지 못하고, 편의점이 닫혀서 우산도 사지 못하고, 크리스마스 식탁에서 가족들 앞에서 한국이 그립다고 고백하고, 기차 파업을 겪고, 영사관 앞에서 무너질 거야.'
'하지만 괜찮아. 그 모든 과정이 너를 이끌어줄 테니까. 한 한국인 유학생 지수를 만나고, 그녀의 아버지 박 회장을 만나고, 김 부장의 전화를 받고, 현대자동차 재계약을 성사시키고, 마침내 네 가족의 축복을 받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클라우스, 이 년 전의 너는 독일인의 합리주의와 효율성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라고 믿었지. 감정보다 데이터, 따뜻함보다 체계, 관계보다 개인의 독립성을 중시했지. 너는 한국의 비논리적 따뜻함을 처음엔 비웃기까지 했잖아. 삼겹살 회식에서 왜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왜 부장이 모든 팀원의 점심을 챙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
'그런데 결국 너를 구한 것은, 네가 비웃었던 바로 그 문화야. 뮌헨 영사관 앞에서 낯선 한국인 여성이 너에게 휴지를 건네준 그 순간. 박 회장이 너의 비자 업무를 가족처럼 맡아준 그 정성. 김 부장이 이른 새벽에 독일로 전화를 걸어준 그 우정. 그것이 너를 살렸어.'
'너는 이제 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스템은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가장 따뜻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국은 효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세상에서 가장 드문 나라라는 것을.'
'육 개월 뒤, 헬가와 아이들이 온다. 그들도 이 땅에서 살게 될 거야. 막시밀리안은 국제학교에서 한국인 친구들을 사귈 거고, 레나는 한국어로 동요를 부르게 될 거야. 헬가는 서울의 맑은 가을 하늘 아래서, 내가 왜 그렇게 이 도시를 사랑했는지 이해하게 될 거야.'
'클라우스, 독일을 떠난다고 해서 독일을 버리는 건 아니야. 너는 여전히 독일인이야. 하지만 너는 이제 한국인이기도 해. 두 나라를 사랑하고, 두 문화를 이해하고, 두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그것이 네 정체성이야. 그리고 그것이 너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할게. 네가 앞으로 만나게 될 한국인들, 특히 김 부장, 박 회장, 지수 같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라. 그들은 너를 가족처럼 대했어. 그 따뜻함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도 한국에서 다른 외국인들을 만날 때, 똑같이 따뜻하게 대하는 거야. 정이라는 건 그런 거야. 주고받는 게 아니라, 계속 흐르는 거야.'
'자, 이제 편지를 마칠게. 비행기가 뜨기 시작했네. 잘 가, 이 년 전의 나. 그리고 잘 와, 앞으로 돌아오게 될 나. 너의 진짜 집, 대한민국에서.'
'Mit tiefer Liebe, Klaus.'
'깊은 사랑을 담아, 클라우스가.'
그는 노트북을 닫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Helga, ich liebe dich. Sechs Monate noch. Dann sind wir zusammen in Seoul.'
헬가, 사랑해. 앞으로 육 개월. 그러면 우리 함께 서울에서.
카페를 나서며,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서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월의 강남. 벚꽃이 한창이었다. 연분홍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꽃잎 하나가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여린 꽃잎. 작지만 강한 생명.
한국 같았다.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속은 강인하고 따뜻한 나라. 독일의 견고한 참나무가 아니라, 부드럽게 휘어지며 모든 것을 품는 벚나무. 그리고 이 나라는, 수많은 이방인을 품어주는 나라였다. 한때 자신을 비웃었던 독일인 엔지니어 한 명까지도.
그는 꽃잎을 셔츠 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리고 강남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남산타워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오늘 저녁, 김 부장과의 약속이 있었다. 순댓국집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드디어, 진짜 내 집이다.'
그는 미소 지었다. 서울의 저녁 바람이 그의 금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는, 이 나라가 가진 모든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엔딩
독일인의 합리주의도, 한국의 '정'이라는 마법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서 온 사람이, 가장 따뜻한 나라에 녹아내리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한국을 사랑하게 된 외국인 친구가 있으신가요? 특히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나라에서 온 분이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이 있다면, 댓글로 꼭 나눠주세요. 대한민국의 진짜 힘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오늘도 '정'을 품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자랑스러우셔도 됩니다 🇰🇷
16:9 Thumbnail Image Prompt (English, no text)
Cinematic wide-angle composition, 16:9 aspect ratio, photorealistic film style. A tall blonde German man in his mid-thirties with short neatly combed golden hair and a trimmed beard, wearing a tailored navy blazer over a crisp white shirt, sits alone at a window seat in a rustic Korean-German fusion cafe in Gangnam, Seoul. He gazes thoughtfully out the window with glistening eyes, a single pink cherry blossom petal resting on his shoulder. In front of him, an open laptop displays a German letter and an empty iced Americano glass with melting ice. Through the large window behind him, a softly blurred Seoul cityscape at golden hour—Namsan Tower glowing warmly red in the far distance, modern glass skyscrapers catching the last sunlight, cherry blossom trees in full bloom lining the street, Korean pedestrians walking with their coffees. Warm amber light streams across his face, highlighting the mix of melancholy and deep relief in his expression. A small Korean-German flag pin is visible on his lapel. Mood: introspective, nostalgic, deeply emotional, triumphant. Color palette: warm amber gold, soft cherry blossom pink, navy blue, muted charcoal. Shot on Sony A7R IV with 85mm f/1.4 lens, shallow depth of field, film-grain texture, cinematic Netflix-style color gr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