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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대찌개가 미국을 뒤집었다: 스팸 천대하던 나라, 지금은 줄 서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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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350자 이상)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개의 도시 한복판, 노리에가 스트리트의 허름한 차고 같은 식당 앞에 미국인들이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삼십 분을 기다려 들어간 자리마다 빨간 냄비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그 냄비 안에 든 것은 다름 아닌 스팸이었습니다. 미국이 만들고 미국이 버린 통조림. 전쟁이 끝나자 미국인들은 스팸을 외면했습니다. 가난의 상징, 쓸모없는 것의 대명사가 된 바로 그 캔. 그런데 지금 미국인들이 그 스팸이 들어간 빨간 냄비를 먹으려고 줄을 섭니다. 한국이 완전히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의정부의 포장마차에서 시작된 부대찌개가 태평양을 건너 안개의 도시를 점령하기까지, 칠십오 년에 걸친 가장 통쾌한 역전극이 지금 공개됩니다.

    ※ 1. 영국 음식 전문 기자 제임스가 샌프란시스코 출장 중, 아우터 선셋 지역의 차고 식당에서 미국인들이 줄 서서 부대찌개를 먹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천이십육 년 이월, 샌프란시스코. 태평양에서 밀려온 안개가 금문교를 삼키고 도시 전체를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안개를 칼이라 부른다. 여름에도 재킷 없이 못 나가는 곳. 마크 트웨인이 내 생애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었다고 말한 바로 그 도시다.

    나는 영국 글로벌 매체의 푸드 섹션 기자다. 십이 년째 세계 각지의 음식 트렌드를 추적하고 있다. 파리의 미슐랭 삼성 레스토랑부터 방콕 차이나타운의 새벽 국수까지,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이번 출장은 샌프란시스코였다. 베이 에어리어의 한식 열풍을 취재하라는 에디터의 지시였다. 이천이십오 년 한 해 동안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만 십여 개가 넘는 한식 레스토랑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것이 기사의 출발점이었다.

    취재 첫날, 현지 한국인 가이드 민수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관광객이 몰리는 피셔맨즈 워프가 아니었다. 택시는 도심을 벗어나 서쪽으로 달렸다. 안개가 점점 짙어졌다. 골든 게이트 파크를 지나 아우터 선셋 지구로 접어들었다. 관광객은커녕 사람 구경도 힘든 주택가였다. 노리에가 스트리트.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나란히 늘어선 조용한 골목이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차가운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민수가 앞장서서 걸었다. 두 블록을 지나 어느 집 앞에서 멈추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보여 주려는 건지 몰랐다. 그냥 평범한 주택가의 차고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차고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열다섯 명쯤 되었을까. 금요일 저녁 일곱시. 비니를 눌러 쓴 젊은 백인 커플, 패딩 재킷을 입은 아시아계 여성 셋, 스마트폰을 보며 기다리는 흑인 남성 한 명. 전부 미국인이었다. 줄은 차고 입구에서 시작해 보도 위로 꺾여 있었다. 작은 간판이 보였다. 한글이 적혀 있었다. 영어는 한 글자도 없었다. 한글로만 쓰인 가게 앞에 미국인들이 삼십 분째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서 문이 열리고 네 명이 빠져나갔다. 종업원이 고개를 내밀고 손짓했다. 다음 네 명이 들어갔다. 민수와 나도 줄에 섰다. 기다리는 동안 안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았다.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종류의 뜨거운 향기. 코를 자극하는 매운 기운에 저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며칠째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던 위장이 소리를 냈다. 아니, 내 위장은 멀쩡했다. 그냥 본능적으로 배가 고파진 것이다.

    이십분 뒤, 안으로 들어갔다. 차고를 개조한 식당이었다. 천장이 낮고 테이블이 빽빽했다. 여덟 개 남짓한 테이블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그리고 모든 테이블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냄비가 가스버너 위에 올려져 있었다. 빨간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가장 가까운 테이블의 냄비를 들여다보았다. 순간 나는 멈칫했다. 스팸이었다. 네모나게 썬 분홍색 고기가 빨간 국물 위에 떠 있었다. 그 옆으로 동그랗게 썬 소시지가 보였다. 하얀 치즈가 반쯤 녹아 국물 위를 덮고 있었고, 노란 라면이 국물에 잠겨 물결쳤다. 배추김치가 빨갛게 익어 냄비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고, 하얀 떡가래가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다. 두부도 보였고, 대파도 보였다.

    미국인 남성이 서툰 젓가락질로 스팸을 집어 입에 넣었다. 눈을 감았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옆자리의 금발 여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냄비 위에서 쏟아지는 김을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모양이었다. 스물대 초반으로 보이는 히스패닉계 청년이 라면을 건져 후루룩 소리를 내며 빨아들이더니 친구에게 외쳤다. 이거 미쳤다고. 다음 주에 또 오자고.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스팸을. 미국인들이. 줄 서서. 먹고 있다. 그것도 줄 서서 삼십 분을 기다려서 먹고 있다. 어릴 때 일이 떠올랐다. 런던 교외, 아홉 살쯤 됐을 때였다. 부엌 찬장에서 파란색 캔을 꺼냈더니 어머니가 황급히 내 손에서 빼앗으며 말했다. 그건 먹는 게 아니라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거라고. 학교 급식에서도 스팸은 나오지 않았다. 슈퍼마켓 진열대 맨 아래 칸, 먼지 쌓인 채 놓여 있던 그 캔. 그게 유럽에서도 스팸의 위치였다.

    종업원을 불렀다. 이 음식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부대찌개라고 했다. 발음이 어려웠다. 세 번을 물어 겨우 따라 했다. 부-대-찌-개. 한국 전쟁 때 생긴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미국이 만든 통조림이 전쟁을 통해 한국으로 갔다. 한국 사람들이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 음식이 칠십오 년이 지난 지금, 미국 서부 해안 도시의 차고 식당에서 미국인들을 줄 세우고 있다. 나는 냄비를 주문했다. 뚝배기처럼 생긴 스테인리스 냄비에 재료가 가득 담겨 나왔고, 종업원이 버너에 불을 켰다.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 2. 제임스가 스팸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차 대전의 영웅에서 전후 미국의 수치로 전락한 스팸. 쓰레기 이메일의 어원이 된 통조림의 몰락사.

    차고 식당으로 돌아가기 전에, 스팸이 어떻게 미국에서 잊혀졌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을 열고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스팸의 역사. 그것은 곧 미국의 이십 세기 역사이기도 했다.

    일구삼칠 년, 미네소타주 오스틴. 호멜 푸드 코퍼레이션이 세상에 내놓은 캔 하나가 스팸이었다. 돼지고기 어깨살과 햄을 다져 캔에 넣은 단순한 가공육. 이름의 유래조차 명확하지 않다. 스파이스트 햄의 줄임말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호멜은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출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팸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이차 세계대전이었다. 일구사일 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선으로 보낼 식량이 필요했다. 스팸은 완벽한 답이었다. 유통기한이 길고, 냉장이 필요 없고, 캔 하나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미 육군은 호멜에 대량 발주를 했다. 공장은 이십사 시간 풀가동에 들어갔다. 파란 캔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유럽 전선, 태평양 전선, 아프리카 전선. 미군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스팸이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 승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전장에서 매일 스팸을 먹어야 했던 병사들에게 스팸은 전쟁의 기억 그 자체였다. 굶주림과 공포와 전우의 죽음이 떠오르는 맛. 그들은 더 이상 스팸을 먹고 싶지 않았다. 일구오공 년대, 미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스테이크를 구웠고 로스트 치킨을 오븐에 넣었다. 통조림 고기를 먹을 이유가 사라졌다.

    일구육공 년대, 스팸은 완전히 밀려났다. 요리 칼럼니스트들은 스팸을 전쟁의 유물이라 불렀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스팸의 위치는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맨 위 칸에는 프라임 등급 스테이크가, 중간에는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그리고 맨 아래 먼지가 쌓인 칸에 스팸이 놓였다. 가격표에는 삼 달러도 안 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아무도 집어 들지 않았다.

    일구팔오 년에 발표된 한 사회학 논문은 숫자로 현실을 보여 주었다. 연소득 이만 달러 이하 가정의 육십삼 퍼센트가 스팸을 구매했지만, 오만 달러 이상 가정은 칠 퍼센트에 불과했다. 스팸은 가난의 지표가 되어 있었다. 장바구니에 스팸을 넣으면 계산대에서 창피한 눈길을 받는 것, 그것이 미국에서 스팸의 현실이었다.

    결정타는 일구구공 년대에 나왔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메일이 일상이 되면서, 원치 않는 광고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쓸모없는 메일을 스팸이라 불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 쓸모없는 것, 쓰레기. 컴퓨터 용어 사전에 등재된 스팸의 정의는 이러했다. 대량으로 무차별 발송되는 쓰레기 메일. 어원은 호멜의 통조림 고기 브랜드에서 유래. 한때 전쟁 영웅의 식량이었던 이름이, 이제 세상에서 가장 원치 않는 것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천 년대 들어 스팸은 미국의 기억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호멜의 북미 지역 판매량은 매년 소폭 하락하거나 정체를 반복했다. 젊은 세대는 스팸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푸드 매거진에서 스팸을 다루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요리 프로그램에서 스팸을 사용하는 셰프는 없었다. 스팸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 태평양 건너편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스팸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번성하고 있었다. 일구팔오 년 호멜이 한국의 씨제이제일제당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한국산 스팸 생산을 시작한 이후, 한국에서의 스팸 판매량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천이십이 년까지 한국에서 팔린 이백 그램 기준 스팸은 십구억 캔을 넘어섰다. 일인당 스팸 소비량 세계 일위. 미국 전체 소비량의 절반에 육박하는 양을 한국인들이 먹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 스팸의 위상이었다. 나는 한국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스팸 선물 세트를 검색했다. 화면이 사진으로 가득 찼다. 리본이 달린 고급 상자에 스팸 캔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가격은 사만 원에서 십만 원. 미국 돈으로 삼십 달러에서 팔십 달러였다. 미국 슈퍼마켓에서 삼 달러도 안 하는 캔이, 한국에서는 명절 선물이 되어 있었다. 추석에 시부모님께 드리는 선물, 설날에 직장 동료에게 보내는 선물. 리뷰에는 고급스럽다, 실용적이다, 받으면 기분 좋다는 말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만든 나라에서 먼지 쌓인 채 잊혀진 캔이, 건너간 나라에서 리본을 달고 선물이 되어 있었다. 같은 캔인데 운명이 정반대였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이 간격이 부대찌개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고.

    ※ 3. 한국으로 날아간 제임스가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를 찾는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재료로 허기를 달래던 사람들의 이야기. 의정부식과 송탄식의 차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천까지 직항으로 열두 시간. 인천공항에 내리자 이월의 찬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나는 곧장 의정부로 향했다.

    의정부. 서울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의 도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기지가 대거 주둔했던 곳이다. 택시 기사에게 부대찌개 거리라고 했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이 부대찌개 먹으러 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맛있게 먹으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좁은 골목이었다. 양쪽으로 식당 간판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원조 부대찌개, 할머니 부대찌개, 의정부 원조 맛집. 이십 개가 넘는 식당이 한 거리에 모여 있었다. 점심이 막 지난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한국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배낭을 멘 서양인들, 카메라를 든 일본인 관광객들도 보였다.

    나는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을 찾아갔다. 오뎅식당. 일구육팔 년에 상호 등록을 한 부대찌개의 원조였다. 낡은 간판이었지만 글씨는 선명했다. 육십 년 넘게 이어져 온 곳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은 실내에 테이블이 여덟 개쯤 놓여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흑백 사진, 색이 바랜 사진, 신문 기사 스크랩.

    카운터에서 사십 대 남성이 나를 맞았다. 통역 앱을 켜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이 식당을 시작한 허기숙 할머니의 손자였다. 할머니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식당과 이야기는 남아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일구삼구 년에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열두 살이었다.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한 달 넘게 걸었다. 춥고 배고팠다. 의정부에 도착한 것은 일구오공 년 겨울이었다. 미군 부대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 할머니 가족은 부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묵을 팔았다. 나무 수레 위에 어묵 냄비를 올려 부대 앞에서 팔았다.

    어느 날 미군 한 명이 캔을 들고 왔다. 파란색 캔이었다. 스팸이었다. 소시지도 가져왔고 햄도 가져왔다. 부대 보급품 창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유출이 금지된 물품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미군 부대 주변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부대고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구워서 팔까 생각했다. 그런데 열두 살 할머니가 다른 제안을 했다. 끓여 보자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손자가 한 번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북쪽에서 어머니가 끓여 주던 찌개가 생각났다고. 배추와 고기를 넣고 끓이던 그 맛이 그리웠다고.

    큰 냄비를 가져왔다. 스팸을 썰어 넣었다. 소시지도 썰어 넣었다. 고추장을 풀고 마늘을 다져 넣었다. 김치가 있었다. 그것도 넣었다.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국물이 빨개졌다. 스팸에서 기름이 녹아나오고, 김치에서 신맛이 올라오고, 고추장의 매운 향이 퍼졌다. 미군들이 모여들었다. 뭐 하냐고 물었다. 새로운 음식이라고 했다. 코리안 스튜라고 설명했다. 한 미군이 맛을 봤다. 눈이 커졌다. 맛있다고 했다. 그날 냄비가 다 팔렸다.

    그것이 부대찌개의 시작이었다. 부대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찌개. 부대찌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불렀다.

    나는 손자에게 의정부식과 송탄식의 차이를 물었다. 손자가 설명해 주었다. 의정부식은 맑은 육수를 쓴다. 소시지와 햄을 적당히 넣고 김치의 맛이 섞여 개운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반면 경기도 평택시 송탄 지역의 부대찌개는 다르다. 소시지와 햄을 훨씬 많이 넣고, 사골 육수를 베이스로 쓴다. 그리고 치즈를 첨가한다. 토마토 소스와 베이크드 빈즈까지 넣기도 한다. 그래서 송탄식은 의정부식보다 걸쭉하고 기름지고 깊은 맛이 난다. 송탄에도 미군 공군 기지가 있었고, 그쪽 미군들이 좋아하는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간 것이 차이를 만들었다.

    손자가 냄비를 한 상 차려 주었다. 의정부식이었다. 맑은 육수에 스팸과 소시지, 김치, 대파, 두부, 라면이 들어 있었다. 불을 켜자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연한 빨간색 국물이 투명하게 보글거렸다. 샌프란시스코의 차고 식당에서 봤던 그 냄비와 재료는 같았지만, 국물의 색과 농도가 달랐다. 좀 더 맑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라면을 건져 한 입 먹었다. 충격이었다. 진하면서도 개운한, 매우면서도 후련한,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깊은 맛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벽에 걸린 흑백 사진을 바라보았다. 포장마차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의 사진이었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었다. 옆에 냄비가 보였다. 저 냄비 하나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열두 살 소녀의 배고픔이, 북쪽에서 가져온 찌개의 기억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파란 캔과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탄생시켰다.

    손자가 말했다.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고 했다. 없는 게 많으면 있는 걸로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고.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 4. 부대찌개가 어떻게 미국으로 역수출됐는지 추적한다. 한인 이민자들의 식당에서 시작해 유튜브, 틱톡을 타고 퍼져나간 과정. 샌프란시스코 한식 붐의 배경.

    의정부에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서울 호텔 방에서 노트북을 열고 부대찌개가 어떻게 태평양을 건넜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물결은 한인 이민자들이었다. 일구육오 년 미국 이민법 개정 이후 한국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갔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아틀랜타,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그들은 새로운 땅에서 식당을 열었다. 불고기와 비빔밥이 메뉴의 주인공이었지만, 한인 손님들이 진짜 먹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부대찌개였다. 메뉴판 맨 뒤에 한글로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들만 아는 숨은 메뉴. 영어를 못 하는 이모님이 주방에서 끓이는, 고향의 맛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천일 년에 문을 연 노리에가 스트리트의 한 차고 식당이 부대찌개의 전설이 되었다. 아우터 선셋 지구, 관광객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 주택가에 차고를 개조해 만든 한국 포장마차 스타일의 술집이었다. 밤 여섯 시에 문을 열고 새벽 두 시까지 영업했다. 치킨과 소주가 유명했지만, 진짜 시그니처는 부대찌개였다. 이리터 반이 넘는 거대한 냄비에 담겨 나오는 빨간 국물. 스팸, 소시지, 라면, 김치, 두부가 가득한 그 냄비를 미국인 손님들이 처음에는 신기한 눈으로, 그 다음에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물결은 소셜 미디어였다. 이천이십 년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을 멈추게 했을 때, 사람들은 집에 갇혀 요리를 시작했다. 틱톡과 유튜브에 부대찌개 레시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냄비에 스팸과 라면과 김치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 비주얼은 영상 콘텐츠로서 완벽했다. 빨간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치즈가 녹아 늘어나고, 면을 건져 올리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 조회수가 폭발했다. 수십만, 수백만 조회를 기록하는 영상들이 쏟아졌다.

    댓글창이 불타올랐다. 미국인들은 물었다. 이게 스팸 맞냐고. 라면이랑 치즈를 같이 끓인다고. 김치가 뭐냐고. 어디서 먹을 수 있냐고. 그리고 직접 만들어 보았다. 스팸을 사고, 한국 슈퍼마켓에서 고추장과 김치를 샀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러나 점점 능숙하게 냄비를 끓이기 시작했다. 집에서 만든 부대찌개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넘쳐났다.

    세 번째 물결은 한류 전체의 힘이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빌보드를 점령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고,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세계 일위를 찍은 이천이십 년대 초중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케이팝에 빠진 미국 십대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그리고 한국 음식을 찾았다. 김치, 떡볶이, 불고기를 거쳐 마침내 부대찌개에 도달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이 흐름의 최전선이었다. 이천이십오 년 한 해 동안 베이 에어리어에 십여 개의 새로운 한식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샌프란시스코 스탠더드 지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식 다이닝 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 샌프란시스코는 한식이 그 어느 때보다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천이십오 년이 베이 에어리어 한식의 해였다고 선언했다.

    이 도시가 유독 한식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미식의 도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이 도시의 식문화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도시는 춥다. 여름에도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부는 이 도시에서, 뜨끈한 국물 음식에 대한 갈망은 본능적이다. 클램 차우더가 명물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부대찌개는 클램 차우더보다 뜨겁고, 클램 차우더보다 맵고, 클램 차우더보다 중독적이었다. 안개의 도시에 빨간 냄비가 안착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나는 유튜브를 열었다. 부대찌개를 검색했다. 첫 번째 영상. 조회수 삼백만 회. 미국인 셰프가 부대찌개를 만들고 있었다. 스팸을 얇게 썰면서 이렇게 해야 맛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영상. 조회수 오백만 회. 영국인 여성이 서울의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고 있었다. 첫 입을 먹고 눈을 크게 뜨더니 이게 스팸 맞냐고 물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프랑스인, 독일인, 캐나다인. 국적은 달랐지만 반응은 같았다. 놀라움, 감탄, 중독. 하나같이 다시 먹고 싶다고,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자기 나라에도 이런 식당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댓글 하나가 눈에 박혔다. 이 음식을 먹으려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시간을 운전했다. 한국인들은 천재가 아닌가. 나는 그 댓글을 노트에 적었다.

    한 독일 남성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발견했다. 허벅지를 카메라에 보여 주고 있었다.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한글이었다. 확대해서 봤다. 부대찌개 레시피였다. 재료 목록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스팸, 소시지, 김치, 라면, 고추장, 마늘. 서울에서 부대찌개를 먹고 충격을 받아 레시피를 몸에 새겼다고 했다.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

    ※ 5. 스팸 제조사 호멜의 실적 변화. 한국 스팸 판매량 세계 일위, 고추장 맛 스팸 출시. 미국이 만들고 버린 것을 한국이 되살려 역수출한 구조를 데이터로 증명한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다음 날, 이메일 수신함에 뜻밖의 메일이 와 있었다. 호멜 푸드 코퍼레이션 홍보팀이었다. 출장 전에 인터뷰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곳이다. 제목은 인터뷰 요청 재검토였다. 오후 삼시에 통화가 가능하냐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삼시에 전화가 왔다. 남성 목소리였다. 호멜의 마케팅 디렉터 데이비드라고 소개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하려 했습니다. 스팸이 미국에서 어떤 이미지를 가졌었는지, 저희 회사도 잘 압니다. 민감한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펜을 들었다.

    데이비드가 숫자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호멜의 분기 실적 보고서를 몇 년치 내려받아 분석한 내 자료와 대조하며 들었다. 이천이십일 년 사분기, 북미 지역 스팸 판매량은 전년 대비 삼 퍼센트 하락. 이천이십이 년도 비슷했다. 미국 내 판매는 정체 내지 소폭 감소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 뒷장에 글로벌 판매량이 나와 있었다. 전년 대비 십이 퍼센트 증가. 다음 분기는 십오 퍼센트 증가. 미국에서는 안 팔리는데 해외에서는 잘 팔리고 있었다. 지역별 매출 비중을 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전체 스팸 매출의 사십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 년 전만 해도 이십팔 퍼센트였다.

    이천이십육 년 초, 호멜의 최근 실적이 발표되었을 때, 미국 내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매출이 주춤한 가운데, 아시아 지역 스팸 판매가 호멜의 해외 수익을 견인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부대찌개가 이 변화에 영향을 주었냐고 직접 물었다. 데이비드의 대답은 단호했다.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천십오 년쯤부터 미국에서도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젊은 세대가 스팸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조사를 했더니, 원인은 한국 음식이었습니다.

    한인타운 식료품점에서 스팸 판매가 급증했고, 한국 레스토랑이 늘어나면서 스팸 수요도 올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인들이 한국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만들기 시작했다. 슈퍼마켓에서 한국인이 아닌 손님들이 스팸을 집어 드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천이십 년대 들어 소셜 미디어의 힘은 더 커졌다. 부대찌개 영상 하나가 수백만 조회수를 찍으면, 그 다음 주 슈퍼마켓 스팸 판매량이 뛰었다. 미국 유명 셰프들이 메뉴에 스팸을 올리기 시작했다. 부대찌개에서 영감을 받은 퓨전 요리가 등장했다.

    데이비드는 호멜 내부의 전략 전환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이천이십사 년, 호멜은 고추장 맛 스팸을 출시했다. 한국의 대표 양념 고추장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이었다. 매콤하고 달콤한 맛을 더한 이 신제품은 코스트코 매장에서 팔 개짜리 팩으로 독점 판매되었다. 같은 해, 한국식 바비큐 맛 스팸도 선보였다. 간장, 마늘, 생강, 고추장의 조합을 스팸에 적용한 것이다. 스팸을 만든 회사가 한국의 맛을 자기 제품에 입히고 있었다. 역수출이 아니라 역흡수라 해야 마땅했다.

    회사의 공식 입장을 물었다. 데이비드가 천천히 말했다. 한국의 부대찌개 문화가 스팸의 글로벌 이미지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저희 회사의 공식 입장입니다. 저희가 스팸을 만들었지만, 한국이 스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만든 나라가 인정한 것이다. 만든 나라가, 받은 나라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감사하냐고 물었다. 데이비드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스팸을 그냥 통조림으로만 봤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거기에서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고,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저희가 배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노트에 정리했다. 일구삼칠 년 미국이 스팸을 만들었다. 일구사일 년 전쟁에 보냈다. 일구오공 년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은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김치와 고추장을 만나게 했다. 부대찌개가 태어났다. 칠십오 년이 지났다. 이천이십사 년, 만든 회사가 한국의 양념 맛을 자기 제품에 넣었다. 역사가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숫자를 다시 보았다. 한국에서 이천이십이 년까지 팔린 스팸은 이백 그램 기준 십구억 캔 이상. 일인당 소비량 세계 일위. 호멜의 아시아 태평양 매출 비중은 사십 퍼센트로 급증. 고추장 맛 스팸 출시. 한국식 바비큐 맛 스팸 출시. 미국 내 젊은 세대의 스팸 재평가. 모든 화살표가 한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 6.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제임스. 부대찌개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역전의 상징임을 깨닫는다. 한국의 창의성이 세계 식탁을 바꾸고 있다는 결론.

    나는 노리에가 스트리트의 차고 식당으로 돌아갔다. 취재의 시작점이자 끝점이었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예상대로 줄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이십 명이 넘었다. 줄에 선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인종이 다양했다. 나이도 다양했다. 이십 대 대학생부터 육십 대 부부까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고, 절반 이상이 기다리는 동안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을 보고 있었다. 부대찌개 영상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삼십 분을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부대찌개를 주문했다. 냄비가 나왔다. 버너에 불이 켜졌다. 빨간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스팸이 보였다. 얇게 썬 분홍색 네모. 소시지가 어슷하게 썰려 있었고, 노란 라면이 국물에 잠기고 있었다. 배추김치가 빨갛게 옆에 놓였고, 하얀 치즈 한 장이 냄비 위에 올려져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국물을 한 숟갈 떠 먹었다. 의정부에서 먹었던 맛이 떠올랐다. 같은 음식이되 다른 느낌이었다. 의정부의 맑고 개운한 국물과 달리, 이곳의 국물은 좀 더 걸쭉했다. 치즈가 녹아 섞이고 스팸의 기름기가 국물에 배어, 송탄식에 더 가까운 맛이었다. 의정부식의 청량함과 송탄식의 깊은 맛이 태평양을 건너면서 자연스럽게 섞인 것이다.

    스팸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짭짤한 맛이 먼저 왔다. 그다음 김치를 한 조각 먹었다. 신맛이 스팸의 느끼함을 씻어냈다. 국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매콤하고 깊은 맛이 입안을 채웠다. 라면을 건졌다. 빨간 국물이 면에 잔뜩 묻어 있었다. 한 입 먹었다. 스팸의 기름기, 김치의 신맛, 고추장의 매운맛, 육수의 감칠맛이 전부 면 한 가닥에 농축되어 있었다. 이해가 됐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런던에서, 그리고 이 샌프란시스코의 차고에서 사람들이 왜 줄을 서는지. 이건 단순히 재료를 섞은 게 아니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결과물이었다. 미국이 만들고 버린 재료에 한국의 양념과 손맛이 만났을 때, 어느 쪽도 혼자서는 만들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맛이 탄생한 것이다. 스팸의 짠맛을 김치의 신맛이 잡아주고, 고추장의 매운맛이 느끼함을 날려 버리고, 사골 육수의 깊은 맛이 전체를 하나로 묶어 준다. 치즈의 고소함이 더해지고, 라면이 그 모든 맛을 흡수해서 한 젓가락에 담아낸다.

    냄비를 비우고 나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차고 식당의 노란 불빛이 등 뒤에서 안개 속으로 퍼져 나갔다. 노리에가 스트리트는 여전히 조용한 주택가였지만, 이 작은 차고 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빨간 국물의 향기가 안개를 물들이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기사를 쓸 시간이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했다. 손가락을 키보드에 올렸다.

    일구오공 년 겨울, 의정부. 열두 살 소녀가 냄비를 끓였다. 미군이 준 스팸과 집에 있던 김치를 넣었다. 고추장을 풀고 물을 부었다. 그게 전부였다. 칠십오 년이 지났다. 그 냄비는 이제 샌프란시스코에서 끓고 있다. 안개의 도시, 태평양이 보이는 주택가의 허름한 차고 안에서 끓고 있다. 미국인들이 줄을 서서 먹고 있다.

    타이핑이 빨라졌다.

    스팸은 미국이 만들었다. 이차 대전 군인들의 식량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인들은 스팸을 잊었다. 가난의 상징이 되었고, 쓰레기 이메일의 어원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한국은 그 캔에서 가능성을 봤다. 김치와 고추장을 만나게 했다. 사골 육수를 부었다.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 탄생했다.

    호멜의 숫자를 적었다. 한국 스팸 판매 십구억 캔 돌파. 아시아 태평양 매출 비중 사십 퍼센트. 고추장 맛 스팸 출시. 한국식 바비큐 맛 스팸 출시. 호멜 마케팅 디렉터의 공식 발언을 인용했다. 한국이 스팸의 가치를 재정의했다. 만든 나라가 인정했다. 만든 나라가 역사를 다시 쓴 것이 아니라, 받은 나라가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부대찌개는 음식 그 이상이다. 역전의 상징이다. 만든 나라가 버린 것을 받은 나라가 살렸다. 가난이 창의성이 되었고, 생존이 예술이 되었다. 열두 살 소녀의 냄비 하나가, 칠십오 년을 건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세계의 식탁 위에 새겨 놓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안개는 매일 밤 걷힌다. 그리고 안개가 걷힌 자리마다, 빨간 냄비의 불이 켜지고 있다.

    기사를 에디터에게 보냈다. 다음 날, 좋은 기사라는 답이 왔다. 메인 페이지에 올리겠다고 했다.

    유튜브 엔딩멘트 (400자 내외)

    지금까지 한류에 빠진 세상 제일 탄, 샌프란시스코 부대찌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미국이 만들고 버린 스팸이 한국의 손을 거쳐 어떻게 세계를 뒤집었는지, 안개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된 역전극이 가슴 뜨거우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을 꼭 눌러 주세요. 다음 제이 탄에서는 뉴욕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대찌개 열풍을 전해 드립니다. 한글 간판 앞에 삼십 분씩 줄 서는 뉴요커들의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댓글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부대찌개 레시피나 추억을 나눠 주시면, 다음 영상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한류에 빠진 세상,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 대표 이미지 프롬프트

    A photorealistic cinematic wide shot combining two worlds: On the left side, a historical black-and-white scene of a young Korean woman at a small food stall near a US military base in 1960s Uijeongbu, Korea, cooking in a large pot. On the right side, a modern full-color scene of a diverse line of Americans waiting outside a Korean restaurant in foggy San Francisco at night, warm red light spilling from the door. In the center, a large steaming pot of budae jjigae (Korean army stew) with SPAM, ramen, kimchi, cheese, and sausages bridges both scenes. The Golden Gate Bridge is faintly visible through fog in the background. Epic storytelling composition, warm red-orange food tones contrasting with cool blue-grey fog,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8K quality, no text.

    🖼️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Thumbnail (16:9, photorealistic, no text):

    A cinematic photorealistic overhead shot of a large bubbling Korean budae jjigae (army stew) in a traditional Korean steel pot on a gas burner. The stew is filled with sliced SPAM, hot dogs, ramen noodles, melted cheese, kimchi, and tofu in a rich red spicy broth. Steam rises dramatically. In the blurred background, the Golden Gate Bridge of San Francisco is visible through fog. The warm orange-red glow of the stew contrasts with the cool blue-grey foggy San Francisco atmosphere. Dramatic food photography lighting,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8K quality.

    씬1 이미지 프롬프트

    씬1-A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exterior night scene of a small, unassuming Korean restaurant hidden inside a converted two-car garage on a foggy residential street in San Francisco's Outer Sunset neighborhood. Warm golden light spills from the open garage door onto the sidewalk. A diverse line of about 15 people — young Americans, couples, groups of friends in jackets and beanies — waits outside in the fog. Korean lettering is visible on a small sign above the door. The famous San Francisco fog rolls through the street. Cool blue-grey fog contrasting with warm interior light,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1-B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interior scene of a cramped, bustling Korean restaurant inside a converted garage in San Francisco. Multiple tables are filled with diverse American customers gathered around large bubbling pots of bright red budae jjigae (Korean army stew). Steam rises from every table. Customers use chopsticks to pull noodles from the red broth. Sliced SPAM, hot dogs, cheese, and kimchi are visible in the pots. Walls are decorated with Korean posters and photos. Warm, lively, crowded atmosphere, yellow interior light,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2 이미지 프롬프트

    씬2-A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vintage-style scene recreating a 1940s American World War II military supply depot. Stacks of blue SPAM cans fill wooden crates on a loading dock. American soldiers in WWII uniforms carry crates. A large American flag hangs in the background. Sepia-toned warm light, historical documentary feel, grainy film quality,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2-B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modern scene of a dusty, neglected bottom shelf in an American supermarket. A few dented SPAM cans sit alone on the lowest shelf, covered in a thin layer of dust. Above them, premium organic meats and fresh steaks fill the well-lit upper shelves. Price tag shows $2.99. The contrast between the neglected SPAM and the premium products above tells a story. Cold fluorescent supermarket lighting, lonely atmosphere,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3 이미지 프롬프트

    씬3-A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scene of the famous Uijeongbu Budae Jjigae Street in South Korea. A narrow alley lined with over 20 small Korean restaurants, all with colorful signs advertising budae jjigae. Steam rises from open kitchen windows. Korean and foreign tourists walk along the street. Some restaurants have lines outside. Daytime, autumn atmosphere, traditional Korean neighborhood feel mixed with modern signage,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3-B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scene recreating a 1960s Korean street food stall near a US military base. A young Korean woman in simple traditional clothing tends a large bubbling pot on a portable stove at a wooden cart. US military base fencing and Quonset huts are visible in the background. The pot contains sliced SPAM, sausages, and kimchi in red broth. Korean civilians gather around, some holding metal bowls. Vintage documentary photography style, warm nostalgic tones, historically evocative,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4 이미지 프롬프트

    씬4-A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scene of a smartphone screen showing a viral TikTok video of a bubbling pot of budae jjigae (Korean army stew) with millions of views. The phone is held by a young American woman in a modern San Francisco apartment kitchen. On the counter behind the phone, ingredients are spread out: SPAM cans, ramen packets, gochujang paste, kimchi jar, sliced cheese. The kitchen has a view of San Francisco buildings through the window. Modern, trendy, social media influenced cooking atmosphere, bright natural light,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4-B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exterior scene of a trendy new Korean restaurant in San Francisco's Inner Sunset neighborhood. The modern-minimalist facade has both Korean and English signage. A diverse crowd of young San Franciscans waits in a stylish line outside. Through the large front window, diners are visible eating from steaming pots of budae jjigae. The San Francisco skyline and fog are visible in the distance. Evening golden hour light, contemporary urban dining culture,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5 이미지 프롬프트

    씬5-A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scene of a modern corporate conference room at Hormel Foods headquarters in Austin, Minnesota. A large screen displays a graph showing SPAM global sales growth with Asia-Pacific region highlighted in red showing dramatic upward trend. A marketing executive in a business suit presents to colleagues. On the conference table, a can of SPAM Gochujang flavor and SPAM Korean BBQ flavor are displayed alongside a photo of budae jjigae. Corporate professional atmosphere, clean modern design,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5-B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product photography scene of the new SPAM Gochujang flavored can displayed alongside a traditional Korean earthenware pot of gochujang paste, dried red chilies, and a steaming pot of budae jjigae. The SPAM can features Korean-inspired design elements. A small Korean and American flag stand crossed behind the products. Clean white background with dramatic product lighting, cultural fusion concept,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6 이미지 프롬프트

    씬6-A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dramatic scene of the Golden Gate Bridge in San Francisco at sunset, with the famous fog beginning to clear. In the foreground on a cliffside viewpoint, a steaming pot of Korean budae jjigae sits on a portable burner, glowing warm red-orange against the cool blue-purple twilight sky. The warm steam from the pot rises and mingles with the retreating fog. Metaphorical composition showing Korean food culture warming the foggy city. Epic cinematic landscape photography,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씬6-B (16:9, photorealistic):

    A photorealistic wide shot of a bustling San Francisco street at night. Multiple Korean restaurant storefronts glow with warm red and golden light along the block. Korean signage mixes with English. A long diverse line of customers stretches down the sidewalk. Steam rises from restaurant ventilation. The San Francisco skyline twinkles in the background. The scene captures the Korean food wave transforming the city's dining landscape. Cinematic night photography, warm vs cool light contrast, 16:9 aspect ratio, hyper-reali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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