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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기술이 바꾼 일상 - 스마트홈
한국의 집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존의 ‘AI가 무섭게 감시하는 집’이라는 방향을 버리고,
한국의 스마트홈을 취재하러 온 냉소적인 외신 기자가 실제 재난을 겪으며 한국 기술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로 전면 개편했습니다.
단순히 제품 기능을 나열하지 않고, 스마트홈과 119·아파트 관리시스템·이웃 공동체가 연결되어 사람을 구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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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새벽 2시 17분, 서울의 한 아파트가 스스로 119에 신고했다. 집주인은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국의 스마트홈을 과장된 기술이라고 비웃던 영국 기자는 그날 밤, 사람보다 먼저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집을 목격한다.
※ 1: 집이 먼저 119에 신고했다
새벽 2시 17분, 서울을 뒤덮은 폭우가 통유리창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었다.
하늘을 가른 번개가 한강 위로 떨어지자 거실 조명이 순간적으로 꺼졌다. 카메라의 붉은 녹화등도 함께 사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빗소리만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3초 뒤, 바닥을 따라 푸른 비상조명이 켜졌다.
천장 스피커에서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외부 전력 공급이 불안정합니다. 독립형 안전 전원으로 전환합니다.”
거실 한가운데 서 있던 다니엘 하트가 어둠 속에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영국의 국제뉴스채널 WBN에서 파견된 특파원이었다.
“멋진 연출이군요. 정전이 되자마자 집이 말을 걸다니. 한국 기업들이 우리 방송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어요.”
카메라 감독 에마가 장비의 전원을 확인했다.
“다니엘, 연출 아니야. 건물 전체가 정전됐어. 휴대전화 신호도 약해졌고.”
“더 좋군. 스마트홈이 인터넷 없이도 정말 스마트한지 확인할 기회잖아.”
소파에 앉아 있던 일흔넷의 박순자가 창밖을 바라봤다. 빗물에 흐려진 유리창 너머로 맞은편 아파트의 불빛이 한꺼번에 꺼져 있었다.
“기자 양반은 지금도 취재 생각뿐이에요?”
“위기일수록 기술의 진짜 수준이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음성으로 커튼을 열고 냉장고가 우유를 주문하는 걸 누구나 보여줄 수 있죠. 하지만 전기와 인터넷이 끊겼을 때도 작동해야 진짜 기술 아닙니까?”
순자가 대답하려던 순간, 집 안에 짧은 경고음이 울렸다.
푸른색이었던 바닥 조명이 노란색으로 변했다. 거실 벽면에 아파트 평면도가 나타났고, 그중 주방 부분이 붉게 깜박였다.
“주방에서 비정상적인 전력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다니엘이 주방을 돌아봤다. 전기레인지도, 전자레인지도 꺼져 있었다. 냉장고만 비상 전원을 이용해 낮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아무 일도 없습니다.”
“주방 벽면 내부 전선의 온도가 3분 동안 11.8도 상승했습니다.”
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집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순자 님은 이동하지 마십시오.”
다니엘이 황당하다는 듯 천장을 올려다봤다.
“집이 주인에게 명령까지 하는군요.”
“화재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이라면 확률이 얼마죠?”
“현재 37퍼센트입니다.”
다니엘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37퍼센트. 한국의 미래형 주택이 새벽 두 시에 집주인을 겁주는 기준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불도, 연기도 없습니다.”
서준호가 벽면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스마트홈 통합시스템을 개발한 한국인 엔지니어로, 외신 취재를 안내하기 위해 함께 머물고 있었다.
“단순한 전기 사용량을 보는 게 아닙니다. 전선의 저항 변화와 벽 안쪽 온도, 습도, 미세한 냄새 입자를 동시에 분석하고 있어요.”
“그 설명은 사고가 난 뒤에 해도 충분합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으니까요.”
“사고가 난 뒤에는 늦습니다.”
준호의 짧은 대답에 다니엘의 표정이 굳었다.
그때 거실 벽면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화재 발생 예측 시간, 12분 이내.
순자의 손녀 지우가 잠에서 깬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열 살짜리 아이는 품에 작은 토끼 인형을 안고 있었다.
“할머니, 왜 불이 꺼졌어?”
“비가 많이 와서 잠깐 그런가 보다. 이리 와.”
지우가 순자에게 달려가자 거실 천장의 센서가 아이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바닥에는 지우가 걸어야 할 안전 경로가 초록빛으로 표시됐다.
다니엘은 그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으라고 손짓했다.
“바닥에 불을 켜주는 기능은 인정하죠. 하지만 그걸 생명 구조 기술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거창합니다.”
경고음이 다시 울렸다.
“예측 위험도가 61퍼센트로 상승했습니다.”
주방 벽 안에서 ‘탁’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다니엘이 천천히 주방으로 걸어갔다. 준호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다가가지 마세요.”
“전선 하나가 튀는 소리입니다. 오래된 집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어요.”
“이 아파트는 완공된 지 8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그렇다면 더 문제군요.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홍보한 스마트아파트가 1년도 되지 않아 합선된다는 뜻이니까.”
“아직 합선이라고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준호의 손을 뿌리치고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집이 위험을 과장한 것인지, 아니면 한국의 기술이 정말 사람보다 먼저 사고를 알아차린 것인지 말이죠.”
그가 주방 벽면에 손을 가져간 순간, 집 전체에 날카로운 경보가 울렸다.
“접촉하지 마십시오.”
다니엘의 손이 멈췄다.
“전원 차단 절차를 시작합니다.”
주방 쪽 비상조명이 꺼졌다. 냉장고의 작동음도 멈췄다. 벽면 내부의 차단기가 구역별로 내려가며 연속적인 금속음이 들렸다.
철컥.
철컥.
철컥.
다니엘이 어둠 속에서 벽을 손등으로 살짝 건드렸다.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갑습니다. 센서가 틀렸어요.”
“표면 온도는 정상입니다. 열은 벽체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벽 안을 직접 보지 않고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전력 패턴과 온도 변화가 화재 전 단계와 일치합니다.”
“과거 자료에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집 전체를 공포에 빠뜨린 겁니까?”
집은 다니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벽면 화면에 긴급 신고 연결 표시가 나타났다.
“119에 자동 신고합니다.”
다니엘이 준호를 돌아봤다.
“당장 취소하세요. 불도 나지 않았는데 소방차부터 부르는 겁니까?”
“제가 신고한 게 아닙니다.”
“당신들이 만든 시스템이잖아요.”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이 감지되면 사람의 승인 없이 신고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집주인 허락도 없이요?”
“잠든 사람이나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허락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다니엘이 벽면의 취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붉게 변했다.
신고를 취소할 수 없습니다.
“이건 집이 아니라 감옥이군요.”
순자가 지우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말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다니엘이 돌아봤다.
“집주인의 명령도 듣지 않는데 괜찮으십니까?”
“내가 잠들었을 때는 내 말 듣지 말고, 나부터 살리라고 내가 설정했어요.”
“기계가 틀렸다면요?”
“사람도 틀리잖아요.”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집니다. 기계가 틀리면 누가 책임지죠?”
“기자 양반은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생각하죠?”
“불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이 집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저러는 거예요.”
다니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지우가 코를 찡긋거렸다.
“할머니, 이상한 냄새 나.”
준호가 즉시 몸을 낮췄다.
“무슨 냄새?”
“초콜릿 타는 냄새 같은 거.”
다니엘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처음에는 빗물과 새 아파트 특유의 냄새뿐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주 희미한 탄내가 코끝을 스쳤다.
주방 벽 아래쪽 콘센트 틈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에마, 카메라 켜.”
“배터리가 거의 없어.”
“남은 전부 써. 이건 찍어야 해.”
천장에서는 이미 자동 소화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은 뿌려지지 않았다. 불이 난 위치 주변으로 불연성 기체가 주입되고, 환기 장치가 연기가 거실로 퍼지지 않도록 공기의 방향을 바꿨다.
지우가 기침하기 전에 거실과 주방 사이의 투명 방화벽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다니엘은 방화벽 너머로 번지는 연기를 바라봤다.
“화재가 나기도 전에 주방을 격리한 겁니까?”
“불꽃이 확인되기 전부터요.”
준호가 벽면의 수치를 확인했다.
“사람의 눈에 불이 보였을 때는 이미 늦을 수 있으니까요.”
현관 밖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이 다시 안내했다.
“소방대가 1층 공동현관을 통과했습니다. 구조용 엘리베이터를 단독 운행합니다. 현관까지 예상 도착 시간은 43초입니다.”
다니엘이 시계를 확인했다.
신고가 시작된 지 2분도 지나지 않았다.
“소방대가 벌써 건물 안이라고요?”
준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벽면 화면이 바뀌었다. 1층에 도착한 소방차의 위치, 건물 안으로 진입한 대원들의 동선, 현재 운행 중인 엘리베이터가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홈이 신고한 순간 건물 시스템이 구조 모드로 전환됐습니다. 공동현관은 소방대에만 열리고, 엘리베이터는 다른 층 호출을 중단해요. 동시에 집의 평면도와 차단된 전기 구역, 거주자 수가 대원들에게 전송됩니다.”
다니엘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소방대가 도착해도 출입문 열쇠와 건물 구조를 확인하는 데 몇 분씩 걸립니다.”
“한국도 모든 건물이 이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려는 미래는 분명합니다.”
현관문 밖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소방대입니다. 거주자 네 명, 모두 거실에 계십니까?”
집이 자동으로 대답했다.
“성인 세 명과 아동 한 명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부상자는 없습니다.”
현관문이 소방대의 인증을 확인하고 스스로 열렸다.
완전한 장비를 착용한 대원들이 들어와 주방으로 향했다. 한 명은 순자와 지우의 상태부터 확인했고, 다른 대원은 벽체 내부를 열화상 장비로 살폈다.
“배선함 뒤쪽 온도 117도입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벽 안쪽 단열재로 옮겨붙었겠습니다.”
다니엘의 시선이 굳어졌다.
겉으로는 차갑게 느껴졌던 벽 안쪽이 이미 불붙기 직전까지 달아올라 있었다.
“원인이 뭡니까?”
“낙뢰로 인한 순간 과전압으로 보입니다. 차단기가 작동했지만 연결 부위 일부가 손상됐어요.”
“집의 예측이 맞았다는 겁니까?”
소방대원이 다니엘을 바라봤다.
“예측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불이 난 다음에 왔겠죠.”
다니엘은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준비했던 멘트는 한국의 스마트홈이 공포를 이용해 비싼 기술을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의 뒤에서는 불꽃 한 번 보이지 않은 채 화재가 진압되고 있었다.
다니엘이 새로운 멘트를 시작하려던 순간, 집 안에 또 다른 경고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주방이 아니었다.
벽면 평면도에서 현관 옆 작은 숫자가 붉게 깜박였다.
1702호.
바로 아래층이었다.
“아래층에서 더 높은 위험이 감지됐습니다.”
소방대원이 화면 앞으로 달려왔다.
“위험 종류는?”
“고온과 유독가스가 확인됐습니다. 실내에 생체신호가 한 개 남아 있습니다.”
순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1702호면 민준이네 집이에요.”
“민준이가 누굽니까?”
“여섯 살짜리 아이예요. 엄마가 야간 근무를 가면 가끔 혼자 자요.”
다니엘이 벽면 화면을 바라봤다.
1702호의 온도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주인이 스마트홈의 외부 출입 기능을 꺼둔 상태였다.
아이는 안에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즉시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다니엘도 카메라를 들고 뒤를 따랐다.
“따라오시면 위험합니다.”
“저 아이가 정말 혼자 있다면 세계가 봐야 합니다. 한국의 기술이 어디까지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준호가 다니엘을 가로막았다.
“지금 필요한 건 방송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아래층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아파트 복도가 크게 흔들리고 천장의 조명이 꺼졌다.
벽면 화면 속 1702호의 생체신호가 희미해졌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다.
※ 2: 한국의 미래를 비웃은 기자
시간은 폭우가 시작되기 48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인천국제공항의 자동출입국심사대를 통과한 다니엘은 여권을 주머니에 넣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20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입국장을 빠져나와 있었다.
뒤따라오던 에마가 카메라 가방을 끌며 혀를 내둘렀다.
“수하물 찾는 시간보다 입국 심사가 더 짧았어.”
“빠른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야.”
“또 시작이네.”
“사람들이 기술을 경계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편리함이거든. 얼굴을 보여주고 몇 초 만에 국경을 통과하면, 그 얼굴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는 잊어버리게 되지.”
“한국에 도착한 지 20분 만에 결론부터 내린 거야?”
“나는 홍보 영상을 찍으러 온 게 아니야.”
다니엘은 입국장 밖에서 기다리던 준호를 발견했다. 준호는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 대신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영어로 환영 인사가 떠 있었다.
“WBN의 다니엘 하트 기자님 맞으시죠?”
“종이도 스마트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나라입니까?”
준호가 웃으며 태블릿 화면을 껐다.
“종이를 들고 있으면 이름이 계속 노출되니까요. 확인이 끝났으면 지우는 게 안전합니다.”
다니엘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첫 질문부터 역으로 당한 셈이었다.
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동안 다니엘은 쉴 새 없이 창밖을 살폈다. 고속도로 전광판에는 교통량과 사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나타났고, 터널에 들어가도 휴대전화 영상은 끊기지 않았다.
에마가 창밖을 촬영하며 감탄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컴퓨터 같아.”
“카메라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
“왜?”
“우리가 취재할 건 미래의 편리함이 아니라 그 대가니까.”
“한국에 오기 전부터 기사 제목을 정해놨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스마트홈이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하지만 기계가 노인을 돌본다는 건 결국 가족과 사회가 책임을 넘기는 걸 수도 있어.”
“직접 보고 판단하면 되잖아.”
다니엘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기계가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믿지 않아.”
준호가 룸미러로 그를 바라봤지만 더 묻지 않았다.
취재 장소는 서울의 스마트 주거 실증단지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신축 아파트와 다르지 않았다. 로봇이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하늘에 드론이 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에마는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평범한데요?”
준호가 공동현관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좋은 기술은 사람에게 계속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나타나야 하죠.”
공동현관은 준호가 다가가자 자동으로 열렸다. 다니엘이 즉시 질문했다.
“얼굴인식입니까?”
“얼굴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복제된 사진으로 문을 열 수 있으니까요. 등록된 기기와 걸음걸이, 입주민의 평소 이동 패턴을 함께 확인합니다.”
“걸음걸이까지 저장한다고요?”
“저장 범위는 입주민이 선택합니다.”
“노인들이 복잡한 설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의한다고 보십니까?”
준호가 걸음을 멈췄다.
“그래서 오늘 만나실 분이 중요합니다. 기업 관계자가 아니라 실제로 이 집을 선택한 분이니까요.”
1803호에 들어서자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퍼졌다.
순자는 미래형 은색 옷이 아니라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오래된 라디오가 흘러나왔고, 거실 한복판에는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자개장이 놓여 있었다.
첨단 아파트를 예상했던 다니엘은 잠시 당황했다.
“외국에서 오느라 고생했어요. 밥은 먹었어요?”
“괜찮습니다. 먼저 촬영 준비부터 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괜찮다고 하면 배 안 고프다는 뜻이 아니에요. 예의 차리느라 굶겠다는 뜻이지.”
순자는 다니엘을 식탁에 앉히고 밥그릇을 내왔다.
“취재 대상과 식사하는 것은 언론 윤리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 먹는다고 좋은 기사 써줄 사람이면 기자 하면 안 되지.”
에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니엘은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었다.
그가 국을 한입 먹자 순자보다 집이 먼저 반응했다.
“다니엘 하트 님은 땅콩 알레르기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음식에는 땅콩과 관련 성분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숟가락이 멈췄다.
“내 알레르기를 어떻게 알았죠?”
준호가 자신의 태블릿을 보여줬다.
“방송국에서 보낸 방문자 안전정보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오신 분들은 음식 성분을 정확히 알기 어려우니까요.”
“내 허락 없이 집에 전달한 겁니까?”
“촬영 동의서의 긴급 의료정보 항목에 직접 서명하셨습니다.”
다니엘은 기억을 더듬었다. 출국 전 수십 장의 서류에 서명하면서 세부 항목을 읽지 않았던 것이다.
순자가 웃으며 반찬을 밀어줬다.
“기자 양반도 자기가 뭘 허락했는지 다 모르잖아요. 노인들만 모르는 줄 알았어요?”
다니엘은 반박하지 못했다.
식사 도중 순자가 물을 마시려 하자 천장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했다. 정수기가 순자가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컵 절반만큼 채웠다.
“왜 컵을 가득 채우지 않죠?”
“내가 손목 힘이 약해서 가득 따르면 쏟아요. 이 집이 처음에는 자꾸 가득 줬는데, 내가 두 번 쏟고 나니까 절반만 주더라고.”
다니엘이 정수기를 살폈다.
“사용자의 실수를 학습했다는 겁니까?”
“실수라고 하면 섭섭하지. 내가 편한 양을 배운 거예요.”
순자는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집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릇은 자동으로 운반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왜죠?”
“그릇 하나 안 들면 내가 하루에 손을 쓸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편한 것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달라요.”
준호가 덧붙였다.
“이 집의 목적은 사람을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돕고, 위험한 순간에만 개입하는 겁니다.”
“기업 홍보문구처럼 들리는군요.”
“그럼 직접 시험해보세요.”
다니엘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순자의 지팡이를 소파 뒤에 숨기고, 복도 바닥에 작은 가방을 놓았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장애물을 만든 것이다.
에마가 카메라 뒤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노인에게 위험한 장난을 치는 건 아니겠지?”
“시스템을 확인하는 겁니다.”
잠시 뒤 순자가 거실로 나왔다. 화장실로 향하려던 순간, 복도 조명이 붉게 변했다.
“이동 경로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순자는 가방을 발견하고 멈췄다.
“누가 가방을 여기 놨어요?”
다니엘이 대답하지 않자 집이 먼저 말했다.
“14시 32분, 다니엘 하트 님이 가방을 이동시켰습니다.”
에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순자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기자 양반, 우리 집이 고자질도 잘하죠?”
“카메라가 계속 사람을 추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카메라 영상, 아무 데나 보내는 거 아니에요. 넘어졌는지 자세만 확인하고 바로 숫자로 바꾼대요.”
준호가 설명을 보탰다.
“영상 자체를 외부 서버로 보내지 않고 집 안에서 분석합니다. 사람이 쓰러졌는지, 정상적으로 누워 있는지만 판단한 뒤 결과값만 전송해요.”
“기업이 그렇게 주장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믿죠?”
순자가 다니엘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면 기자 양반 나라의 집은 믿을 수 있어요?”
“무슨 뜻입니까?”
“거기는 혼자 사는 노인이 쓰러지면 집이 뭘 해줘요?”
다니엘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건 지금 취재와 관계없는 질문입니다.”
“왜 관계가 없어요? 기자 양반은 이 집이 필요 없다고 말하려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럼 다른 방법이 더 좋다는 뜻 아닌가?”
다니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에마는 발코니에서 혼자 서 있는 다니엘을 발견했다. 그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오래된 여성의 사진이 떠 있었다.
“어머니야?”
다니엘이 화면을 껐다.
“7년 전 사진이야.”
“혼자 계시다 돌아가셨다는 그분?”
“아침에 통화하기로 했어. 그런데 내가 바빠서 오후로 미뤘지. 오후에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늦었어.”
“그래서 스마트홈을 싫어하는 거야?”
“기계가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거야.”
집 안에서 순자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그러자 침실 조명이 켜지고 실내 공기 정화장치가 작동했다.
“박순자 님의 일시적인 기침을 감지했습니다. 호흡은 정상입니다.”
다니엘은 한동안 그 불빛을 바라봤다.
‘만약 어머니의 집도 이렇게 깨어 있었다면.’
그는 떠오른 생각을 억지로 지웠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휴대전화에는 이틀 뒤 기록적인 폭우가 예상된다는 재난 알림이 도착했다.
다니엘은 알림을 확인하고 냉소적으로 웃었다.
“좋아. 인터넷도 전기도 불안정한 날까지 여기서 촬영하지.”
에마가 놀라 그를 바라봤다.
“취재 일정은 내일 끝나잖아.”
“이 집이 진짜 미래인지 확인하려면 가장 나쁜 날을 봐야 해.”
다니엘은 거실 천장을 올려다봤다.
“모든 연결이 끊어진 순간에도 이 집이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그의 말을 들은 것처럼 집 안의 조명이 한 번 깜박였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한 벽면 내부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 3: 태풍이 서울을 덮친 밤
기상청이 예상했던 것보다 비는 하루 먼저 시작됐다.
오후 다섯 시부터 쏟아진 폭우는 두 시간 만에 도로 일부를 물에 잠기게 했다. 휴대전화마다 재난 알림이 연이어 울렸고, 아파트 관리방송에서는 지하주차장 차량을 지상으로 이동해 달라는 안내가 나왔다.
다니엘은 오히려 흥분한 표정이었다.
“이 정도면 조건이 충분하군요.”
순자가 창문을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은 다칠까 봐 걱정인데 기자 양반은 신이 났네요.”
“기술은 최악의 상황에서 검증해야 합니다.”
“사람이 위험한 게 기자한테는 좋은 상황이에요?”
다니엘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준호는 벽면 화면으로 건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옥상 배수량이 증가하고 있었고, 지하주차장 입구에는 자동 차수판이 올라왔다. 침수 위험이 있는 구역의 전기차 충전기 전원도 자동으로 차단됐다.
에마가 화면을 촬영했다.
“관리실에서 전부 조작하는 건가요?”
“각 구역이 먼저 판단하고 관리실에서 전체 상황을 확인합니다. 한곳에서 모든 걸 통제하면 중앙 시스템이 고장 났을 때 건물 전체가 멈추니까요.”
다니엘이 끼어들었다.
“결국 인터넷이 끊기면 각 집은 고립되겠군요.”
“가정용 통신망, 건물 내부 안전망, 외부 긴급망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가 동시에 끊어지면요?”
준호가 다니엘을 바라봤다.
“그때는 사람이 움직입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군요.”
“기술이 사람을 없애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밤 열 시가 지나자 바람까지 거세졌다. 순자는 지우를 침실에 재우고 거실로 돌아왔다.
“아이 엄마는 언제 옵니까?”
“오늘 병원 야간 근무예요. 지우는 원래 자기 집에서 자야 하는데, 아래층 민준이가 열이 나서 엄마가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혹시 감기 옮을까 봐 우리 집에 맡긴 거고.”
“민준이라는 아이도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간 겁니까?”
“그렇겠죠.”
순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집은 그 대화를 기록한 듯 천장 센서를 한 번 움직였다.
다니엘은 작은 장비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준호가 장비를 살폈다.
“전파 차단기입니까?”
“인터넷이 끊긴 상황을 재현하려는 겁니다.”
“허가 없이 사용하면 안 됩니다.”
“외부망을 공격하는 장비는 아니에요. 이 집 안의 무선통신만 제한합니다.”
“지금은 실제 재난 상황입니다. 테스트를 진행할 때가 아니에요.”
“그래서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다니엘이 장비의 전원을 켜려 하자 순자가 손등을 때렸다.
“남의 집에서 뭘 마음대로 끊어요?”
“이 집이 인터넷 없이도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비 오는 날 우산에 구멍 내보고 정말 안 젖나 시험해요?”
에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할머니 말이 맞아.”
다니엘은 마지못해 장비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시험은 필요하지 않았다.
밤 11시 48분, 아파트 단지 전체에서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인근 통신시설이 낙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휴대전화 안테나가 한 칸으로 줄어들었고 실시간 방송도 끊겼다.
벽면 화면에 외부망 연결 실패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다니엘이 즉시 카메라 앞에 섰다.
“지금 이 순간, 한국이 자랑하는 초연결 스마트홈의 외부 통신이 끊어졌습니다. 집이 모든 것을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제 평범한 콘크리트 상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집이 대답했다.
“외부망 연결이 중단됐습니다. 건물 내부 안전망과 독립형 기능은 정상입니다.”
복도 조명이 켜지고 현관문 보안장치도 그대로 작동했다. 실내 온도와 공기질, 순자의 움직임 역시 계속 측정되고 있었다.
다니엘이 벽면 화면을 확인했다.
“외부 서버와 연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작동하죠?”
“기본적인 판단은 집 안에서 처리하니까요.”
준호가 손바닥만 한 장치를 벽에서 꺼내 보였다.
“이 장치 안에 순자 어르신의 생활 패턴과 안전 기준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외국의 서버가 멈춰도, 통신사가 멈춰도 집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은 계속합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없는 오래된 판단 기준으로요?”
“재난이 발생한 몇 시간 동안 최신 유행을 추천할 필요는 없습니다. 넘어졌는지, 불이 났는지, 숨을 쉬고 있는지 판단하면 됩니다.”
다니엘이 반박하려던 순간 집 안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이번에는 외부 통신이 아니라 전력이었다.
에마가 비명을 삼켰다.
3초 후 바닥의 푸른 비상조명이 켜졌다.
“외부 전력 공급이 불안정합니다. 독립형 안전 전원으로 전환합니다.”
순자가 지우가 자는 방으로 향했다. 순자의 걸음에 맞춰 바닥 조명이 침실까지 이어졌다. 침실 문을 열자 아이는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다니엘은 조명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정전 중에도 사용자의 위치를 알고 있군요.”
“카메라만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바닥 압력과 움직임, 초저전력 레이더를 함께 사용합니다.”
“감시라는 표현이 더 정확해 보이는데요.”
순자가 지우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기자 양반은 자꾸 누가 본다고만 생각하네요.”
“실제로 보고 있으니까요.”
“나는 아무도 안 봐줄까 봐 무서워요.”
다니엘이 순자를 바라봤다.
“남편 죽고 처음 혼자 자던 날, 내가 밤에 쓰러지면 아침까지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화기를 머리맡에 놔도 손이 안 움직이면 소용없잖아요.”
순자가 침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거실로 돌아왔다.
“이 집이 내 딸을 대신한다고 생각 안 해요. 내 딸이 올 때까지 내가 혼자 죽지 않게 붙잡아주는 거지.”
다니엘의 표정에서 냉소가 잠시 사라졌다.
그때 주방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탁.
벽면 화면에 비정상적인 전력 변화가 나타났다.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이후 상황은 빠르게 진행됐다.
스마트홈은 화재 가능성을 예측했고, 다니엘은 오작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벽 안쪽 온도는 계속 상승했다. 119 자동 신고가 시작됐고, 소방대가 도착하기 직전 콘센트 틈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다니엘은 자신의 눈앞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전부터 움직이는 집을 목격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그다음이었다.
아래층 1702호에서 고온과 유독가스가 감지됐다.
순자가 민준이라는 여섯 살 아이가 사는 집이라고 말하자 준호는 즉시 관리실에 내부망으로 연결했다.
“1702호 거주자 확인해 주세요.”
잠시 뒤 관리실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등록상 성인 보호자 한 명, 아동 한 명입니다. 보호자 휴대전화는 현재 단지 밖에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순자의 얼굴이 굳었다.
“민준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고 했는데.”
“아동의 외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럼 민준이가 혼자 있다는 거예요?”
1702호의 현관 카메라는 꺼져 있었다. 집주인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실내 감지 정보의 외부 공유를 최소화해둔 상태였다.
다니엘이 화면을 가리켰다.
“생체신호가 있다고 했잖아요. 아이가 어느 방에 있는지는 모릅니까?”
“개별 세대의 상세 정보는 긴급상황이 확인되기 전까지 외부에서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이 긴급상황 아닙니까?”
“시스템이 긴급 권한 전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벽면에 승인 대기 시간이 나타났다.
59초.
다니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람이 안에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1분을 기다린다고요?”
준호가 즉시 대답했다.
“누군가 거짓 신고로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도 막아야 합니다.”
“안전과 사생활 중 하나를 선택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군요.”
“선택하는 게 아닙니다. 둘 다 지키기 위한 절차예요.”
58초가 40초로 줄어들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복도가 흔들리고 천장의 먼지가 떨어졌다.
1702호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생체신호는 흐릿해졌다가 사라졌다.
소방대원들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정전으로 일반 엘리베이터는 멈췄지만, 구조용 엘리베이터는 별도 전원을 이용해 17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니엘도 카메라를 들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준호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촬영팀은 안에 계세요.”
“저 아이가 안에 있다면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해서 뭘 하려고요? 카메라에 담으려고요?”
“세계에 보여줘야죠.”
“아이의 구조가 먼저입니다.”
“나는 방해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는 순간 대원들은 당신까지 보호해야 해요.”
두 사람이 맞서는 사이 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이는 천둥이 치면 숨는 버릇이 있어요.”
준호가 돌아봤다.
“어디에 숨습니까?”
“자기 방 옷장 안에요.”
준호는 즉시 내부망으로 소방대에 정보를 전달했다.
“1702호 아동은 작은방 옷장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니엘의 눈빛이 달라졌다.
수많은 센서도 알 수 없었던 정보를 이웃의 기억이 찾아낸 것이다.
그는 카메라를 에마에게 건넸다.
“여기 있어.”
“어디 가려고?”
“카메라 없이 가면 구조를 방해하지 않겠지.”
“다니엘!”
그는 준호와 함께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17층 복도에는 이미 검은 연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비상 환기장치가 연기를 한쪽으로 밀어내며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바닥에는 1702호까지 이어지는 녹색 대피선이 켜졌다.
하지만 1702호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소방대원이 긴급 인증 장치를 갖다 댔지만 붉은 불만 반복해서 깜박였다.
“내부 잠금장치가 열에 손상됐습니다. 강제 개방하겠습니다.”
대원들이 장비를 준비하는 동안 집 안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쿵.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다니엘이 현관문에 귀를 댔다.
“아이가 문 앞에 있습니다.”
순자의 정보와 달랐다. 민준이가 옷장이 아니라 현관까지 나온 것 같았다.
“민준아! 문에서 떨어져!”
안쪽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쿵.
쿵.
그러나 이상했다. 아이의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치고는 지나치게 규칙적이었다.
준호가 바닥을 내려다봤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청소 로봇이에요.”
1702호의 청소 로봇이 반복해서 현관문에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아이의 위치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집이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장치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쿵.
쿵.
로봇이 부딪치는 횟수가 달라졌다.
세 번, 잠시 멈춤.
다시 두 번.
준호가 패턴을 확인했다.
“아이 위치를 보내고 있어요. 작은방, 옷장 안.”
다니엘은 굳은 얼굴로 문을 바라봤다.
인터넷도 끊겼고 전기도 나갔다. 현관 잠금장치는 손상됐으며 외부에서는 실내를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집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계를 문에 부딪쳐 아이의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소방대가 현관문을 강제로 열었다. 검은 연기가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대원들이 안으로 진입했고, 준호는 벽면에 부착된 세대용 비상 단말기를 확인했다.
“민준아! 들리면 대답해!”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작은방에서 소방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옷장 확인!”
이어 무전기에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아동 발견. 의식 없습니다.”
다니엘의 얼굴이 무너졌다.
소방대원이 민준을 안고 복도로 나왔다. 축 늘어진 아이의 얼굴은 검은 그을음으로 덮여 있었다.
대원 한 명이 즉시 산소마스크를 씌웠지만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니엘의 눈앞에 7년 전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차가운 바닥에 혼자 쓰러진 채,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했던 사람.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숨을 쉽니까?”
대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의 심박을 확인하던 손이 멈췄다.
복도에 설치된 스마트홈 화면에서 생체신호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집이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아동의 호흡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 4: 한국의 집은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아동의 호흡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기계음이 끝나기도 전에 소방대원이 민준을 바닥에 눕혔다. 한 대원은 아이의 턱을 들어 기도를 확보했고, 다른 대원은 작은 가슴 중앙에 두 손가락을 댔다.
“심정지 확인. 소아 심폐소생술 시작합니다.”
다니엘은 복도 벽에 붙은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이의 가슴이 일정한 간격으로 눌렸다. 산소마스크가 씌워지고 휴대용 심전도 장비가 연결됐다. 그러나 화면에는 위태로운 선만 흔들리고 있었다.
“민준아, 일어나. 제발 일어나.”
계단을 내려온 순자가 맨발로 복도에 서 있었다. 뒤따라온 에마가 순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할머니, 연기가 위험해요. 위층으로 올라가셔야 해요.”
“저 어린 게 혼자 저 안에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올라가요?”
“지우도 혼자 있잖아요.”
그제야 순자는 정신이 든 듯 18층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준호가 벽면 비상 단말기를 조작했다.
“민준이 의료정보를 구급대에 전송할 수 있습니까?”
“보호자의 사전 동의 범위에서 긴급 의료정보를 전송합니다.”
소방대원의 태블릿에 아이의 정보가 나타났다. 나이와 체중, 알레르기, 복용 중인 약, 최근 진료 기록이 몇 초 만에 정리됐다.
대원이 화면을 확인하며 외쳤다.
“소아 천식 병력 있습니다. 체중 21킬로그램.”
다니엘이 준호를 바라봤다.
“병원 기록이 집에 저장돼 있었던 겁니까?”
“병원 기록 전체가 아닙니다. 보호자가 위급할 때 필요하다고 선택한 최소 정보만 암호화되어 있었어요.”
“아이가 의식이 없는데도 열 수 있고요?”
“소방대와 구급대의 인증이 동시에 확인된 경우에만 열립니다.”
그때 복도 천장에서 붉은 불빛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17층 구조용 엘리베이터에서 1층 현관까지 이어지는 경로였다.
“구급차가 단지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구조용 엘리베이터가 17층으로 이동합니다. 도착 예정 시간 24초입니다.”
다니엘은 창문 밖을 바라봤다.
폭우 때문에 도로는 차량으로 뒤엉켜 있었다. 그런데 단지 안쪽 도로에는 구급차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확보돼 있었다. 불법 주차된 차량에는 긴급 이동 알림이 전송됐고, 진입로를 막고 있던 무인 배송 차량은 자동으로 벽 쪽에 붙어 있었다.
단지 입구에서 아파트 현관까지 모든 신호등과 차단기가 구급차의 이동에 맞춰 바뀌었다.
“누가 저걸 지시한 겁니까?”
“누군가 한 명이 지시한 게 아닙니다.”
준호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집이 사고를 알렸고, 건물이 길을 열었고, 단지가 차량을 비웠습니다. 119가 구조 정보를 받았고, 병원은 아이를 받을 준비를 시작했어요.”
“시스템들이 서로 판단했다는 겁니까?”
“아니요.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구조용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구급대원 두 명이 장비를 끌고 뛰어나왔다. 그들은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민준의 체중과 천식 병력을 전달받은 상태였다.
“가슴압박 계속하겠습니다. 소아 패드 준비.”
한 구급대원이 자동심장충격기를 연결했다. 장비는 민준의 심장 상태를 분석했지만 충격이 필요한 리듬은 아니라는 결과를 냈다.
“산소포화도 측정 안 됩니다.”
“기도 화상 가능성 있습니다.”
“병원 연결됐습니까?”
벽면 단말기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울중앙응급의료센터입니다. 소아응급팀 대기 중입니다. 현장 영상과 생체정보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화면을 바라봤다. 병원에 있는 의사가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화면 연결은 끊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반 통신망은 끊겼지만 재난 전용망은 살아 있습니다.”
“그런 망을 모든 아파트가 쓸 수 있습니까?”
“모든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단지에서 실증하고 있는 겁니다.”
병원의 의사가 아이의 호흡음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구급대원은 민준의 목에 장치를 댔고, 미세한 소리가 재난망을 통해 병원으로 전송됐다.
“기관지 수축이 심합니다. 천식 응급약 투여하고 환기 보조를 계속하세요.”
“확인했습니다.”
약물이 투여되고 다시 가슴압박이 이어졌다.
다니엘은 자신도 모르게 횟수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열, 열하나, 열둘.
소방대원의 이마에서 땀이 떨어졌다.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
에마가 다니엘의 팔을 움켜잡았다.
“제발.”
아이의 입술은 여전히 파랬다.
그때 1702호 현관 안쪽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와 그을음으로 뒤덮인 청소 로봇이 비틀거리며 문밖으로 나왔다. 윗부분은 열에 녹아 있었고 한쪽 바퀴는 제대로 돌지 않았다.
로봇은 민준이 누워 있는 곳을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한 바퀴가 멈추면 다른 바퀴를 굴렸다. 몸체를 끌듯이 움직인 로봇은 아이의 발끝에 도착한 뒤 완전히 멈췄다.
다니엘은 그 작은 기계를 바라봤다.
“저 로봇이 아이를 찾은 겁니까?”
“화재가 발생하자 실내 센서들이 고장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게 저 로봇이었어요.”
“그래서 문에 몸을 부딪친 거고요?”
“집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려고요.”
다니엘이 무릎을 꿇고 로봇을 살폈다. 표면에는 옷장까지 이동했던 흔적과 현관문에 부딪치며 생긴 흠집이 가득했다.
화려한 인간형 로봇도 아니었다. 말을 하거나 사람을 안아 옮길 수도 없었다. 평소에는 바닥의 먼지를 치우던 작은 기계였다.
그러나 모든 연결이 끊긴 순간, 그 기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으로 사람을 불렀다.
구급대원이 민준에게 호흡을 불어넣었다.
갑자기 아이의 몸이 작게 들썩였다.
“잠깐, 맥박 확인.”
모두가 숨을 죽였다.
대원의 손가락이 민준의 목에 닿았다. 몇 초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미약한 맥박 돌아옵니다.”
순자의 입에서 울음 섞인 탄식이 터졌다.
“살았어요?”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자발 호흡 확인 중입니다.”
민준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이어 가느다란 기침이 터져 나왔다. 산소마스크 안쪽에 희미한 김이 서렸다.
“자발 호흡 돌아왔습니다.”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순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에마는 카메라를 든 채 눈물을 훔쳤다. 준호는 벽에 기대 고개를 숙였다.
다니엘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급대가 민준을 들것에 옮겼다. 구조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내부 화면에는 병원까지의 예상 이동 시간과 도로 상황이 표시됐다.
“서울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소아응급실을 확보했습니다.”
다니엘이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폭우 때문에 도로가 막혔는데 병원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일반 경로로는 28분입니다. 지금은 신호 우선 시스템이 적용돼 11분으로 예상됩니다.”
“구급차가 접근하면 신호가 바뀌는 겁니까?”
“교통상황과 주변 차량의 안전을 확인한 뒤 긴급 경로를 만듭니다.”
들것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순자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민준아, 할머니가 네 엄마한테 금방 간다고 말해줄게. 무서워하지 마.”
의식이 희미한 아이의 손가락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다니엘은 복도에 남겨진 청소 로봇을 바라봤다.
화재 진압을 마친 소방대원이 그것을 발로 치우려 하자 다니엘이 먼저 들어 올렸다.
“이건 버리지 마십시오.”
“열에 손상돼서 다시 사용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아이가 살아난 뒤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물건입니다.”
준호가 다니엘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는 한국의 스마트홈을 감옥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니엘은 검게 그을린 로봇을 품에 안았다.
“내가 틀렸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겁니까?”
“기자라면 본 것을 그대로 보도해주면 됩니다.”
다니엘은 복도 끝에 켜진 녹색 대피선을 바라봤다.
“나는 스마트홈이 사람을 대신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 대신 기계가 노인을 보고, 이웃 대신 센서가 아이를 찾는다고요.”
순자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 기계 혼자 민준이를 살린 게 아니에요.”
다니엘이 순자를 돌아봤다.
“집이 먼저 위험을 알렸고, 소방관이 문을 열었어요. 기자 양반은 로봇 소리를 들었고, 나는 민준이가 옷장에 숨는 걸 기억했죠. 병원 의사는 멀리서 방법을 알려줬고요.”
준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한국의 스마트홈은 혼자 움직이는 집이 아닙니다. 사람이 필요할 때 더 빨리 연결되도록 만든 집입니다.”
다니엘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스마트홈을 음성으로 불을 켜고 냉장고가 식료품을 주문하는 집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집은 편리함을 자랑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기 전에 신고했고, 구조대가 들어올 길을 열었으며, 아이의 정보를 병원에 전달했다. 센서가 고장 나자 청소 로봇을 움직였고, 그마저 멈출 때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그 중심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
다니엘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통신이 잠시 복구되며 영국 본사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생방송 연결 준비. 한국 스마트홈 화재 사고와 시스템 실패 여부를 즉시 보고할 것.
다니엘은 메시지를 한참 바라봤다.
본사는 이미 제목을 정해 놓고 있었다.
한국이 자랑한 미래주택에서 화재 발생.
그 역시 이틀 전까지 원했던 제목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답장을 지웠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을 입력했다.
한국의 집은 불이 난 뒤가 아니라, 사람이 죽기 전에 움직였다.
※ 5: 기자가 카메라를 내려놓은 이유
민준을 태운 구급차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지 4분 뒤, 또 다른 경보가 울렸다.
이번에는 특정 세대가 아니라 지하주차장이었다.
“지하 2층 배수시설의 수위가 위험 기준에 도달했습니다.”
준호가 벽면 단말기를 확인했다. 폭우로 불어난 물이 단지 외부 배수관을 역류해 지하주차장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자동 차수판은 이미 올라와 있었지만 화재 진압 과정에서 사용된 물과 내부 배관의 역류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배수 용량을 넘어선 상태였다.
“지하 2층에 사람이 남아 있습니까?”
“현재 확인된 인원은 한 명입니다.”
화면에 흐릿한 사람 형상이 나타났다.
지하주차장 가장 안쪽, 장애인 전용주차구역 근처였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순자가 화면을 보자마자 말했다.
“1604호 최 선생님 같아요.”
“누굽니까?”
“귀가 잘 안 들리는 분이에요. 다리도 불편해서 전동 휠체어를 타요.”
준호는 관리실에 연락했다.
“지하 2층에 잔류자 한 명 확인됐습니다. 구조 인력 보낼 수 있습니까?”
관리실 직원의 목소리가 끊어지며 들려왔다.
“소방대 대부분이 17층 화재 현장에 있습니다. 지하 출입구 수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요.”
“대피 안내는 전달됐습니까?”
“휴대전화 연결이 안 됩니다. 지하 전광판과 경광등은 작동 중인데 반응이 없습니다.”
다니엘은 화면을 확대했다.
전동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휠체어 바퀴 하나가 물에 떠밀려온 주차 방지턱에 걸린 듯했다.
물은 이미 바퀴 절반까지 올라와 있었다.
“왜 집이 그 사람이 지하에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죠?”
“원래는 차량만 이동하러 내려갔다가 휠체어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휴대전화 신호와 주차장 압력센서가 끊겼다가 방금 복구됐어요.”
“구조대가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최소 7분.”
화면 속 수위 예측은 5분 뒤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찰 것이라고 표시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카메라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에마가 그의 표정을 읽었다.
“가지 마. 당신은 구조대원이 아니야.”
“7분을 기다리면 늦어.”
“아까 준호가 한 말 못 들었어? 당신까지 위험해지면 구조해야 할 사람이 늘어날 뿐이야.”
다니엘은 대답하지 않고 카메라를 에마에게 건넸다.
“그러니까 이건 두고 갈 거야.”
“다니엘.”
“어머니가 쓰러져 있던 날, 나는 런던 반대편에 있었어.”
그는 지하주차장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경찰은 문을 열기 위해 건물 관리인을 기다렸고, 관리인은 열쇠를 찾았고, 구급대는 어머니가 어떤 약을 먹는지 몰랐어. 모두가 자기 일을 했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았지.”
다니엘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그 뒤로 기술이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싫어했어. 인정하면 견딜 수 없었으니까. 더 나은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머니가 살 수도 있었다는 뜻이잖아.”
에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야.”
“알아. 하지만 지금 저 사람을 보고도 기다리면, 이번에는 내 잘못이 돼.”
준호가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혼자 가지 마세요. 주차장 구조를 아는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순자가 벽장에서 형광색 조끼 두 벌을 꺼냈다.
“이거 입고 가요. 그리고 휴대용 단말기 가져가요. 지하에서는 휴대전화보다 그게 더 잘 터진대요.”
준호가 단말기를 챙기자 집이 지하주차장까지의 안전 경로를 표시했다.
“지하 2층 동쪽 계단을 이용하십시오. 서쪽 계단은 침수 위험이 높습니다.”
다니엘과 준호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지하 1층에 도착하자 비상문 아래로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차갑고 습한 공기가 올라왔다.
“진입 예상 안전시간은 4분 30초입니다.”
휴대용 단말기에서 집의 안내가 들렸다.
다니엘이 물었다.
“4분 30초가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수위가 비상전원 장치의 안전 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감전 위험이라는 뜻이군요.”
“지하 2층 일반 전력은 차단됐습니다. 다만 침수 상황은 예측과 다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발목까지였던 물이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무릎 가까이 올라왔다.
주차장 조명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대신 바닥과 기둥에 설치된 비상 유도등이 구조 대상까지 이어지는 길을 표시하고 있었다.
녹색 화살표가 차량 사이로 이어졌다.
다니엘이 숨을 몰아쉬었다.
“정전인데도 불이 켜져 있습니다.”
“태양광 비상 배터리와 연결되어 있어요.”
“한국의 아파트는 이런 상황까지 예상합니까?”
“예상했다고 말하기보다, 이전에 겪었던 사고를 잊지 않으려고 한 겁니다.”
준호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한국도 많은 사고를 겪었습니다. 지하공간 침수도 있었고, 구조대가 문 앞에서 시간을 잃은 적도 있었어요.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누군가의 희생 뒤에 다시는 같은 일이 없도록 만든 겁니다.”
두 사람은 장애인주차구역에서 최영식을 발견했다.
영식은 전동 휠체어에 앉은 채 바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뒷바퀴에 금속 구조물이 끼어 헛돌 뿐이었다.
다니엘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가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영식은 반응하지 않았다.
준호가 그의 정면으로 가서 손을 흔들었다. 영식은 그제야 두 사람을 발견했다. 젖은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소리가 안 들리십니다. 정면에서 입 모양을 보여드려야 해요.”
준호는 천천히 말하며 손짓했다.
“휠체어에서 옮겨드리겠습니다.”
영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무릎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가리켰다.
상자 안에서는 아주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이 뚜껑을 열자 젖은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떨고 있었다.
“고양이를 찾으러 내려온 겁니까?”
영식은 입 모양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은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왜 자꾸 누군가를 두고 가지 못하는 겁니까?”
준호가 고양이 상자를 받아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온 거죠.”
두 사람은 휠체어를 들어 장애물에서 빼내려 했다. 하지만 바퀴 사이에 끼인 금속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말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안전 진입 시간이 1분 40초 남았습니다.”
물이 다니엘의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휠체어를 버리고 등에 업어야 합니다.”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계단까지 거리가 멉니다. 물속에서 세 사람 모두 넘어질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주차장 안에 무인 운반차가 있습니다.”
“전기가 끊겼잖아요.”
“비상 구조 모드가 따로 있어요.”
준호가 단말기를 통해 운반차를 호출했다. 평소에는 주민들의 무거운 짐을 차량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옮겨주던 낮은 로봇이었다.
하지만 화면에는 호출 실패가 나타났다.
침수로 이동 경로 일부가 막혀 있었다.
다니엘이 이를 악물었다.
“결국 기계도 못 오는군요.”
“기계가 못 오면 우리가 길을 만들면 됩니다.”
단말기가 대체 경로를 표시했다. 운반차와 영식 사이에 쇼핑카트 두 대가 물에 떠밀려 통로를 막고 있었다.
다니엘과 준호가 물을 헤치며 쇼핑카트를 끌어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주황색 경광등이 나타났다.
무인 운반차가 물을 밀어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영식을 휠체어에서 들어 운반차 위에 앉혔다. 준호는 고양이 상자를 영식의 품에 돌려줬다.
“대피 경로를 시작합니다.”
운반차가 계단 옆 화물용 경사로를 향해 움직였다.
바로 그때 주차장 반대편에서 거센 물이 밀려왔다. 외부 배수관 일부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뛰세요!”
다니엘과 준호는 운반차의 양쪽을 붙잡았다. 기계는 속도를 높였지만 불어난 물이 계속 뒤에서 밀려왔다.
출구까지 남은 거리는 30미터.
20미터.
10미터.
경사로 위에서 관리실 직원들과 소방대원이 손을 뻗고 있었다.
운반차가 경사로에 올라서는 순간 거센 물살이 다니엘의 다리를 덮쳤다. 그의 손이 운반차 손잡이에서 떨어졌다.
몸이 뒤로 넘어지며 물속에 잠겼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흙탕물이 입과 코로 들어왔다. 다니엘은 바닥을 짚었지만 물살 때문에 일어설 수 없었다.
그때 손목에 채워져 있던 방문자 안전밴드가 강하게 진동했다.
어둠 속 바닥에서 녹색 조명이 깜박였다. 다니엘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빛이었다.
그는 빛을 따라 손을 뻗었다.
누군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준호였다.
두 사람은 간신히 경사로 위로 올라왔다.
영식과 고양이도 무사했다.
다니엘은 바닥에 엎드려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안전밴드에서는 심박수가 안정될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가 반복됐다.
잠시 후 에마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녀는 카메라도 없이 다니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신이 카메라를 내려놓은 건 처음 봤어.”
다니엘은 젖은 얼굴로 웃었다.
“카메라가 없으니까 이제야 제대로 본 것 같아.”
“뭘?”
그는 영식을 감싸는 관리실 직원들과 고양이에게 수건을 덮어주는 소방대원을 바라봤다. 그 뒤에서는 작은 운반 로봇이 물을 뚝뚝 흘리며 멈춰 있었다.
“여기서 기술은 사람을 대신하지 않아.”
다니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람이 사람에게 도착할 시간을 줄여주고 있어.”
※ 6: 세계가 보게 된 한국의 미래
날이 밝았을 때 비는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밤새 검은 구름에 가려졌던 서울 위로 아침 햇살이 비쳤다. 침수된 도로에서는 배수 작업이 진행됐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소방관과 관리 직원들이 파손된 시설을 점검하고 있었다.
1803호 거실에는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벽면 화면에는 사고 처리 결과가 차례로 나타났다. 주방 화재는 벽체 일부만 손상된 상태에서 진압됐다. 지하주차장에 남아 있던 영식도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구조에 사용된 무인 운반차는 정비소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기다리는 소식은 따로 있었다.
민준의 상태였다.
순자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지우도 학교에 가지 않고 할머니 옆에 붙어 있었다.
“민준이 안 죽었지?”
“의사 선생님들이 치료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런데 왜 아직 전화가 안 와?”
순자가 대답하지 못하자 집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울중앙응급의료센터로부터 보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재생할까요?”
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빨리 들려줘요.”
민준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거실에 흘러나왔다.
“순자 어머니, 민준이 의식 돌아왔어요. 아직 치료를 더 받아야 하지만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대요. 어머니가 민준이 옷장에 숨는다고 알려주셨다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순자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지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민준이 살았대.”
“그래. 살았어.”
다니엘은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옆에는 불에 그을린 청소 로봇이 놓여 있었다.
로봇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체에 남은 흠집 하나하나가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영국 본사에서는 계속 연락이 왔다.
한국 시간 오전 아홉 시, WBN의 저녁 메인뉴스와 생방송 연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제작진은 다니엘에게 기존 기획대로 스마트홈의 위험성과 화재 사고를 중심으로 보도하라고 요구했다.
에마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본사에서 보낸 원고야.”
다니엘은 첫 문장을 읽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진보했다고 주장하는 스마트아파트에서 화재와 침수 사고가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그는 원고를 끝까지 읽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전부도 아니지.”
“사람들은 사고가 났다는 제목을 누를 거야. 불이 나기 전에 집이 신고했다는 제목보다.”
“당신도 어제까지 그렇게 생각했잖아.”
다니엘은 원고를 삭제했다.
“어제의 내가 틀렸으면 오늘의 내가 고쳐야지.”
생방송 시간이 다가오자 에마가 거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뒤편으로는 첨단 장비 대신 순자의 자개장과 오래된 가족사진이 보이도록 구도를 잡았다.
준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스마트홈을 소개한다면서 화면에는 기술이 거의 보이지 않네요.”
다니엘이 넥타이를 고치며 대답했다.
“이틀 동안 카메라에 기계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계가 아니더군요.”
“그럼 무엇을 찍으려는 겁니까?”
다니엘은 순자와 지우, 그을린 청소 로봇을 차례로 바라봤다.
“기술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카메라의 붉은 불이 켜졌다.
런던 스튜디오의 앵커가 다니엘을 소개했다.
“한국의 첨단 스마트아파트에서 화재와 침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다니엘 하트 특파원을 연결합니다. 다니엘, 한국이 자랑해 온 스마트홈의 안전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것 아닙니까?”
다니엘은 잠시 침묵했다.
원래 준비된 대답은 ‘그렇다’였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런던 스튜디오의 앵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요?”
“저 역시 그렇게 보도할 생각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의 스마트홈은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의 삶을 감시하며, 기술을 과장하고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다니엘은 주방 화재가 시작됐던 벽을 가리켰다.
“지난밤 실제로 이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연기를 맡기 12분 전, 집이 벽 안쪽의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집은 스스로 전기를 차단하고 119에 신고했으며, 불길이 번지기 전에 주방을 격리했습니다.”
화면에는 전날 밤 촬영된 영상이 나갔다.
집의 신고와 동시에 공동현관이 열리고, 구조용 엘리베이터가 소방대만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 뒤 아래층에서는 여섯 살 아이가 화재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통신은 끊겼고 실내 센서도 고장 났습니다. 그러자 집은 마지막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청소 로봇을 현관문에 반복해서 부딪쳤습니다.”
에마가 그을린 로봇을 화면에 비췄다.
“이 작은 로봇이 아이가 숨어 있던 장소를 구조대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구한 것은 로봇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순자가 민준의 습관을 알려주는 영상, 소방대원이 문을 여는 모습, 병원의 소아응급팀이 재난망을 통해 지시하는 장면이 차례로 이어졌다.
“이웃은 아이가 천둥을 무서워해 옷장에 숨는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집은 위험을 감지했고, 건물은 구조대가 들어올 길을 열었습니다. 119는 아이의 위치와 의료정보를 전달받았으며, 병원은 아이가 도착하기 전에 치료 준비를 끝냈습니다.”
런던의 앵커가 물었다.
“그렇다면 다니엘, 한국의 스마트홈이 사람을 구했다고 평가하는 겁니까?”
다니엘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제가 본 미래는 집이 사람을 대신해 구하는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사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기술이 단 한 순간도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미래였습니다.”
순자는 식탁에 앉아 조용히 방송을 듣고 있었다.
“저는 7년 전 혼자 살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졌을 때 집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문은 잠겨 있었고, 구조대는 의료정보를 알지 못했으며, 서로 다른 기관들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에마가 카메라 뒤에서 다니엘을 바라봤다.
“그래서 저는 기계가 사람을 구한다는 주장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있었다면 어머니가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이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사고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기억하고,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집과 소방, 병원, 교통, 이웃을 연결했습니다.”
방송 화면에는 새벽의 서울이 비쳤다.
밤새 구조 작업을 마친 소방관이 젖은 장갑을 벗고 있었다. 관리실 직원은 침수된 주차장을 청소했고, 주민들은 구조 인력에게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세계는 오랫동안 스마트홈을 더 편한 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소리로 불을 켜고, 냉장고가 음식을 주문하고, 로봇이 청소하는 집이라고 말입니다.”
다니엘이 그을린 청소 로봇 위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가 본 스마트홈은 달랐습니다. 주인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주인보다 먼저 알고,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런던 스튜디오에서는 한동안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다니엘이 마지막 문장을 이어갔다.
“한국은 미래에 먼저 도착한 나라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미래란 어느 날 도착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준호와 순자를 돌아봤다.
“다만 한국은 오늘의 문제를 내일까지 미루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기술로 답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생방송이 끝났다.
카메라의 붉은 불이 꺼졌지만 거실에 있던 누구도 바로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니엘 앞에 따뜻한 보리차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집이 아니라 내가 따라줬어요.”
다니엘이 컵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기사 써달라고 주는 거 아니에요.”
“이미 방송은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편하게 마셔요.”
준호의 휴대전화가 연이어 울리기 시작했다. 영국 방송이 끝난 직후 미국과 프랑스, 독일, 싱가포르의 언론사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 해외 방송사는 한국의 고령자 스마트주택을 취재하고 싶다고 했고, 다른 언론사는 119와 병원이 연결되는 시스템을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에마가 메시지를 확인하며 웃었다.
“다니엘, 당신 보도 제목이 벌써 정해졌어.”
“뭔데?”
“사람보다 먼저 깨어난 한국의 집.”
순자가 고개를 저었다.
“집이 사람보다 먼저인 건 아니에요.”
“그럼 어떤 제목이 좋을까요?”
순자는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그친 단지에서 아이들이 우산을 접으며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관리 직원들과 주민들은 서로 인사했고, 소방차 한 대가 천천히 정문을 빠져나갔다.
“사람이 잠들어도 마음은 잠들지 않는 집.”
다니엘이 그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집 안의 조명이 아침 햇살에 맞춰 조금 어두워졌다. 환기 장치는 비가 그친 바깥 공기를 확인한 뒤 창문을 열었다.
선선한 바람이 거실로 들어왔다.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
문 옆 화면에 민준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병원 침대에 앉아 있는 민준이 보였다.
민준은 산소관을 하고 있었지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순자가 달려가 문을 열었다.
“민준아!”
화면 속 민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우리 로봇은요?”
다니엘은 그을린 청소 로봇을 들어 화면 앞에 보여줬다.
“여기 있어.”
“많이 아파 보여요.”
“조금 다쳤지만 네가 살아날 때까지 맡은 일을 다 했어.”
민준은 잠시 로봇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고쳐주세요. 제가 집에 가면 고맙다고 말할 거예요.”
준호가 로봇을 받아 들었다.
“새것으로 바꾸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어.”
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새것 말고 얘가 좋아요. 얘가 저 찾았잖아요.”
거실에 있던 어른들이 미소를 지었다.
기술은 언제든 더 새롭고 더 좋은 제품으로 교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위해 끝까지 움직였던 기억까지 교체할 수는 없었다.
다니엘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에는 비판할 장면도, 자극적인 사고 화면도 찾지 않았다.
화면 속에는 오래된 자개장과 첨단 스마트홈, 그을린 로봇과 웃고 있는 아이가 함께 담겼다.
과거와 미래가 한집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은 한국이 가진 가장 뛰어난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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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한국의 스마트홈을 주목한 이유는 음성으로 불을 켜고 로봇이 청소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집과 이웃, 119와 병원, 도시의 교통망까지 하나로 연결해 위험한 순간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는 것. 기술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미 우리 일상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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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와 번개가 몰아치는 밤의 서울, 현대적인 한국 스마트아파트 거실 내부, 화면 중심에는 불에 그을리고 일부가 녹았지만 푸른 비상등을 켠 작은 청소 로봇, 로봇 뒤로 구조된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한국 소방관, 놀라움과 감동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는 영국인 남성 기자, 창밖에는 한강과 서울의 고층 아파트 야경, 바닥에는 구조 방향을 알려주는 초록색 스마트 조명, 첨단기술과 따뜻한 인간애가 동시에 느껴지는 극적인 장면, 한국의 발전된 미래도시 분위기, 감동적이고 영화적인 구도, 섬세한 수채화 질감, 푸른색과 주황색의 강렬한 대비, 16:9 와이드스크린, 고해상도, 글자 없음, 로고 없음, 워터마크 없음
A stormy night in Seoul with heavy rain and lightning, inside a modern South Korean smart apartment, a small fire-damaged robotic vacuum with melted edges and a glowing blue emergency light at the center, a Korean firefighter holding a rescued young child in the background, a British male journalist watching with shock and emotion, the Han River and Seoul high-rise skyline visible through the window, green smart guidance lights on the floor showing the rescue route, a dramatic blend of advanced technology and warm humanity, futuristic South Korean city atmosphere, emotional cinematic composition, detailed watercolor texture, strong contrast between cool blue and warm orange lighting, 16:9 widescreen, high resolution, no text, no logo, no watermark.